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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Jan 07. 2024

떠난 것과 남은 것

새로운 시간

할머니의 49재를 지내기 위해 엄마와 아빠는 제주도로 향했다. 그날로부터 벌써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수십 년의 생을 뒤로하고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그 사진을 마주하며 삶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할머니의 손에 크진 않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한평생 제주도를 떠나본 적이 없던 할머니는 제주도의 바닷가가 보이는 따뜻한 땅에 잠드셨다. 내 생의 첫 죽음이었다.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 속에 하나의 생이 끝났다.


시간의 흐름과 망각의 속도 중에 무엇이 더 빠를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망각의 속도보다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것들은 대게 쌓이고 쌓여 하나의 인간을 구성한다. 나 역시 그러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C는 내게 퍽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C의 말을 들으며 자아를 성찰했다. 그의 말처럼 내 인생의 대부분의 것들이 꽤나 수동성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또 다른 무엇에게 등 떠밀려 사는 삶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의 차는 남양주를 출발해 달렸다. 마주 오는 차의 전조등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셨다. 그들 역시 같은 걸 느꼈을까. 어두운 길 속 자동차의 전조등에 의지해 나아갔다. 하나의 구간에 접어서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갈수록 거칠어져 그 모양새가 제법 공격적이었다. 눈 내리는 어두운 길을 달리며 지나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적어도 이 순간 마음속이 고통은 아니라는 게 축복받은 일 같았다. 하찮게 여긴 것들로부터 구원받은 해였다. 살아있어서 좋았고 이런 감정이 또 나를 살렸다. 하나의 터널을 통과해 오며 한 뼘쯤은 성장했다고 믿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친구들을 보며 덩달아 혼란함을 느꼈지만 이런 것 또한 응당 지금의 내가 겪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달력을 꺼내며 숫자 1을 바라볼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이 더 이상 낙담이거나 좌절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동그랗게 뜬 달을 볼 때, 어디선가 까치를 세 마리 정도 마주할 때마다 늘 빌었던 소원도 이루어졌다. 택배 상자에 붙은 송장을 깔끔하게 떼고 났을 때 또 무심코 같은 소원을 빌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제 나는 무얼 빌어야 하지. 대략 수백 번쯤 빌었던 일이 이루어지니 이젠 또 무얼 수천 번 빌어야 하지. 새로운 시간에는 새로운 마음을 담고 싶었다.


내리는 눈발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신도 믿지 않지만 이 밤,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제주도를 떠나버린 할머니가 부디 좋은 곳에 있기를 바랐다. 할머니의 49재였다. 이젠 할머니가 남기고 간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만 저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아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어요. 오랜만의 업로드인데 저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신 분이 계실까 모르겠네요. 다행히 저는 취업에 성공하여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없는 동안에도 계속 저를 구독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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