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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Oct 11. 2022

비의 경계선을 통과하며

어떤 삶을 위해

남양주까지는 지루한 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 부슬부슬 보다는 조금  강하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와이퍼가 부지런히  몫의 일을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빗줄기가 조금씩 옅어졌다. 우리는 마치 국경을 지나는 것처럼 비의 경계선을 지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구간을 통과하자 하늘이 맑아졌다. 어떠한 지점을 경계로  개의 날씨가 공존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달리고 우리는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이 담쟁이덩굴로 가득 뒤덮인 강변의 카페였다. 강이 바로 보이는 커다란 창가에 앉아 밀크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강의 운치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카페는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흐르는 물의 표면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문장을 적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간단한 예술이 끝난 뒤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감각했다.


커다란 창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저물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해는 산 뒤로 금방 넘어갔다. 급하게 저녁이 찾아왔다. 이런 하강의 이미지를 며칠 전에도 보았던 것 같다. 거의 반년 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수분을 잃어 버석한 나의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낙하하던 순간. 생명력도 없이 길대로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들을 보며 어쩌면 내 모든 영양분은 나의 뿌리로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르고 잘라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나겠지. 해가 지고 또 져도 기어코 다시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금쯤은 닮아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니 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부터 밤은 늘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어떤 밤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마치 몇 년 전의 여름으로 돌아간 것처럼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똑바로 뜬 눈으로 날이 밝아오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때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괴로운 건 아니었다. 다만 상념이 꼬리를 물고 떠오를 뿐.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복숭아처럼 여린 그들의 마음이 무르거나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나의 밤이 조금  눅눅해지는 편이 낫겠다고.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 없이 편히 누울  있었으면 좋겠다고. 눈을 부릅뜬 밤이면 자주 생각했다.  삶도 종종거리며 살아내는 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자주 걱정했다. 그런 걱정으로 그들의 삶을 구해낼  있다면 당연히 그리할  있을 정도로. 기꺼이 나의 밤을 쪼개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먹구름이 가득 껴서 조금 아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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