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위해
남양주까지는 지루한 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 부슬부슬 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와이퍼가 부지런히 제 몫의 일을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빗줄기가 조금씩 옅어졌다. 우리는 마치 국경을 지나는 것처럼 비의 경계선을 지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구간을 통과하자 하늘이 맑아졌다. 어떠한 지점을 경계로 두 개의 날씨가 공존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달리고 우리는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이 담쟁이덩굴로 가득 뒤덮인 강변의 카페였다. 강이 바로 보이는 커다란 창가에 앉아 밀크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강의 운치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카페는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흐르는 물의 표면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문장을 적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간단한 예술이 끝난 뒤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감각했다.
커다란 창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저물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해는 산 뒤로 금방 넘어갔다. 급하게 저녁이 찾아왔다. 이런 하강의 이미지를 며칠 전에도 보았던 것 같다. 거의 반년 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수분을 잃어 버석한 나의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낙하하던 순간. 생명력도 없이 길대로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들을 보며 어쩌면 내 모든 영양분은 나의 뿌리로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르고 잘라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나겠지. 해가 지고 또 져도 기어코 다시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금쯤은 닮아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니 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부터 밤은 늘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어떤 밤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마치 몇 년 전의 여름으로 돌아간 것처럼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똑바로 뜬 눈으로 날이 밝아오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때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괴로운 건 아니었다. 다만 상념이 꼬리를 물고 떠오를 뿐.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복숭아처럼 여린 그들의 마음이 무르거나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나의 밤이 조금 더 눅눅해지는 편이 낫겠다고.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 없이 편히 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눈을 부릅뜬 밤이면 자주 생각했다. 내 삶도 종종거리며 살아내는 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자주 걱정했다. 그런 걱정으로 그들의 삶을 구해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리할 수 있을 정도로. 기꺼이 나의 밤을 쪼개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