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
그를 죽이니 살리니 하면서도 K는 결혼을 다짐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사랑의 형태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이 뜨거움을 지나 연소되고 나면 잿더미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정을 동반한 애증의 단계가 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K는 그와 식장을 보러 다니면서도 그와의 미래를 자조한다. 결혼의 문턱조차 가본 적이 없는 나는 그녀에게 결혼이란 무엇인지 들으며 그 너머를 상상해 본다.
동거는 결혼과 다름없다면서, 어젯밤 그의 입에서 나는 마늘 냄새가 너무나 심해 그의 발 옆에 머리를 거꾸로 두고 잤다며 투덜대는 그녀에게서 결혼을 앞둔 이의 설렘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연소된 뒤의 사랑은 그런 걸까. 사랑이 끝나면 지긋지긋한 현실만이 남는 걸까. 그런 걸 정이라고 부르는 걸까. 알 수 없는 일. K를 보며 내 연애를 반추한다.
매일 일상의 안부를 묻고 바보 같은 순간들을 공유할 때 어쩌면 나는 우리의 견고함을 맹신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다고 순간 그렇게 믿어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모른다고 연거푸 말하지만 사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 작은 내 뒤통수를 쓰다듬을 때.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때. 강아지에게 하듯 내 턱 밑을 자주 간지럽힐 때. 이 모든 걸 따라가다 보면 그 끝은 사랑이란 걸 나는 안다.
나의 연인은 자신이 아파지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버리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나는 내가 아파지면 그에게 나를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대도 마음 한 구석에선 나를 잡으라고 말하고 있진 않을까. 그는 더운 날엔 햇살에서도 소리가 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뒤, 난 매번 햇살이 내리쬐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름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매일을 함께하는 우리는 빠른 속도로 처음의 설렘을 잃어갔다. 그 대신 성 같은 단단함이 우리를 에워쌌다. 때론 연인처럼 또 때론 친구처럼 그렇게 일상을 나누어갔다. 입을 크게 벌려 햄버거를 먹는 나를 보며 나의 연인은 내숭이 없다며 나를 귀여워했다. 돌이켜보면 같이 밥을 먹는 순간이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과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매 끼니를 함께하며 연인과 나는 서로에 기대어 고단함을 견디어냈다.
우리는 연소에 얼마나 다가섰을까. 나는 잿더미가 될 것인가. 역시 알 수 없는 일. 내 뜻대로 가지 않는 열차에 탑승해 버린 나는 좋든 싫든 종착지까지 가보기로 결심한다. 내 사랑의 모양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써보기로 한다. 잿더미가 되던가 지긋지긋한 현실의 동반자가 될 때까지. 그의 곁에서 우리의 결말을 지켜보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