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일 입원을 한다
엄마는 내일 입원을 한다. 내일모레 자궁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녀는 한평생 함께했던 자궁 전체를 도려낸다. 텅 빈 자궁의 자리는 시간이 흐르며 살 덩어리들로 채워지겠지. 채워지기 전까지는 빈 공간을 끌어안고 견뎌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함께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만 하는. 그런 일들은 대개 서럽고 무서웠다. 나는 그게 엄마의 몫이 되었다는 게 슬펐다.
엄마는 입원하는 날 전까지 집안일을 꽉꽉 채워서 했다. 조금이라도 더 해두고 가기 위해서. 남은 가족들이 3박 4일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분주했다. 우리는 세탁기 돌리는 법이나 밥 짓는 법, 작두콩차를 끓이는 방법 따위를 부지런히 배웠다. 그런 일들은 엄마가 돌아오고 나서도 앞으로 몇 달은 우리의 몫이 될 거였다. 우리는 분리수거, 요리, 설거지, 빨래 등 그동안 엄마가 착실히 수행해왔던 일상의 굴레들을 나누어 받았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는 양념갈비를 구워 먹었다. 엄마의 자궁과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거실 한편에 서있는 캐리어가 내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엄마의 수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 모두의 마음이 내 것과 같으리라고 생각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엄마의 덩치가 작아 보였다. 저렇게 작은 사람이 그렇게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게 가혹했다.
수술이 확정된 순간부터 10월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월이 되자 매일매일이 삭제되는 것 같았다. 나 홀로 디데이를 세고 있었다. 차라리 훌쩍 내년으로 시간이 넘어가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다. 엄마의 수술은 커다란 벽 같아서 넘을 수 없고 무조건 부딪혀야만 하는 존재 같았다. 함께해줄 수 없는 일이라 그게 마음 아팠다.
내일 퇴근하고 오면 엄마는 집에 없다. 없을 것이다. 홀로 병동에서 잠에 들겠지. 3박 4일이 지난 후 엄마는 텅 빈 공간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비어있는 자리는 시간이 흘러 채워지겠지. 자궁의 자리를 다른 것들이 대신할 것이다. 자궁의 자리가 채워지면 그땐 엄마의 상실감도 채워질까. 시간이 지나면 처음처럼,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던 때처럼 멀쩡해질까. 알 수 없다. 나는 수술을 앞둔 엄마의 마음을, 그리고 수술이 끝난 후 엄마의 모습을 알 수 없다. 그저 그녀가 무사히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 나는 그 밖의 다른 건 하나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