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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Nov 21. 2022

한 뼘쯤 달라진 어른

따뜻한 아메리카노

후두에 염증이 생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를 내었고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의 마음에 어렴풋이 공감할  있게 되었다. 소리를   없게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쇠의 질감을 닮은 소리가 꽤나 불쾌했다. 소염제를 먹어도 염증은 쉽사리 낫지 않았다. 잔기침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대로 영영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건강은 그것을 잃었을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올해를 시작하면서도 지독하게 앓았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계속 속을 게워내며  지긋지긋한 앓이가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나날들. 그때는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을  알았는데  해를 지나며 이것저것  부단히도 바라 왔던  같다. 그리고 어느새 11. 또다시 건강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자신을 보며 다소 미련함을 느낀다.


목의 염증은 낯설었고 또 낯선 일들을 하게 만들었다. 난생처음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셔보고 장롱에 걸려만 있던 스카프를 목에도 둘러봤다. 한겨울에도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던 내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란 다소 생경한 것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풍미가 깊어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었고 스카프는 목에 둘러보니 평소보다 덜 추워서 좋았다. 시작은 낯설었지만 그것들은 곧 자연스럽게 내 일부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언가 이유가 생기기 전에 자발적으로 변화하기는 어렵다는 걸 점점 느낀다. 아마도 관성적으로 행동하던 것들이 많아서 그럴 테지. 어떤 이유로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다는 건 일상을 생각보다 많이 바꾸어 놓는다. 일상은 견고하지만 작은 것들이 바뀌면 또 금세 그 결을 달리한다. 마치 목소리를 잃은 일주일 동안 나의 일상이 그러했듯이.


후두에 염증이 생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사이 절기는 어느덧 입동을 지나 소설을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만큼  미묘하게 낡아졌다고 생각했다. 그새 새로운 습관 따위가 생겼다. 후두의 염증은 목소리를 바꾸어 놓았고 일상도 바꾸어 놓았다. 바뀐 목소리에 연연하는 사이 나는 조금쯤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적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있는.


하루에 한 번씩은 하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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