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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Jan 31. 2023

시편11. 여호와에 대한 신뢰

illuminated psalm


시편 11. 여호와에 대한 신뢰

여호와는 의로우셔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니

정직한 자가 그의 얼굴을 보리라.



성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은 특히, 약한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표현된다.

억눌리고,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슬픔과 괴로움, 

공감.

그러므로 '의로움'은 중요하다.

성경을 읽다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씌우는 것'에 대한 경고도 자주 등장한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을 내가 당했다고 생각해보면, 숨쉬고 사는 것도 힘드리만큼 괴로울 터다.

어릴적 깊게 새겨진 하나의 억울함이 나에게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인데, 

어린 나는 오십년이 지나도 그 억울함을 잊지 못한다.


거실의 피아노 위에 외할머니와 엄마가 정성껏 기르던 선인장에 예쁜 꽃이 피었다.

삶이란 소소한 것의 기쁨을 느끼는 과정이니, 

엄마와 할머니는 "선인장에 꽃이 피었다"라고 기뻐했다.

일곱살이나 되었을까 싶었던 나는 그게 왜 즐거운일인지도 모를 나이였다.

다음날, 기쁨을 주던 그 꽃이 뚝 떨어져버렸다. "누군가에 의해서!!!"

엄마와 할머니의 추궁은 우리 세 남매로 떨어졌다. "누구냐? 이걸 뗀게!"

지금 생각해보면 꽃이 영양분이 없어서 제혼자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누군가로부터 범인은 '나'로 지목되었다.

엉엉 울면서 '나 아니야'를 외쳤지만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자를 엄마와 할머니는 더 신뢰한 것 같았다.

졸지에 나는 장난치다가 꽃을 떨어뜨린 범인이 되었고, 이미 범인이 된 나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이 작디 작은 에피소드는

십수년이 지나 확인해본바 "어머 그런일이 있었었니?"라며 식구들 중,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억울하게 범인이 된 '나'만이 기억하였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억울함의 고통이란 그런 것이다.


사십대가 넘어서야 나는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피눈물나도록 억울한 일'들이

의외로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서설이 길었지만


그래서,

'의로움'은 중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을 탐닉하면서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의로움'을 위해 살아간다.(사실 양쪽 각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죽어도!)


나의 하나님이

의로운 일을 사랑하고,

억울한자, 슬픈자, 억압받는자, 약한자 편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랑은 그런거다.



#시편 #시편드로잉 #말씀묵상 #시편11 #의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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