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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04. 2020

원자폭탄이 남긴 것

낱장 일기21

원자폭탄에 대해 생각해본다. 1945년 8월 일본에 떨어진 ‘팻맨’과 ‘리틀 보이’,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이제부터 이야기할 것은 원폭의 파괴력, 그에 따른 사상자 및 사건의 진행사항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논지는 다소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으니(사실 그간의 대부분의 글이 이미 그래 왔다) 바로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국제 질서에 관한 것이다.

카뮈는 원폭 투하 소식을 듣고 바로 논설을 싣는다. 그는 과학기술 발달의 결과가 그토록 끔찍한 절멸의 가능성을 만들어냈음에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카뮈가 원폭 이후의 결과(일본의 항복)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카뮈가 가진 인류에 대한 애정, 살인에 대한 깊은 반항 등으로 인하여 원폭이 가져온 또 다른 결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 것이었다.

원폭 투하는 국제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명실상부 해당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이 확고한 패권국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위 획득은 그간 인류 역사의 어느 경우보다도 강렬한 것이었다. 압도적 힘의 증명. 그것도 단 한 번의 폭격으로 수십만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의 확인. 미국의 원폭 투하는 세계에서 힘의 논리에 의한 질서를 확립했다. 그것은 전쟁에 승리한 연합국에게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다음 전쟁의 양상이 인류의 절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적 증거를 얻은 것에 다름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비등한 힘을 갖추지 못한 중소 국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어떤 의미로는 정의의 탈을 쓴 새로운 형태의 공포였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그와 같은 힘의 질서는 여전하다. 과거에 그러한 힘의 질서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도 분명히 힘에 따른 논리는 존재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원폭 투하의 결과는 잔혹함과 사상 논리를 넘어선 모든 것을 무로 만들어버리는 인류 전체의 생명을 담보로 한 힘의 질서를 의미했다. 그리고 인류는 아직 그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폭 투하가 아니라 다른 과정으로 전쟁이 종식되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 편하게 유감을 표하거나 분노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해서 어떠한 확신도 불가능하다. 오히려 반대로의 확신은 가능한데 빠르든 늦든 결국 폭력의 발달은 지금과 유사한 형태의 질서를 불러왔으리라는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결과가 같을 것이라는 예측은 지금까지의 회의 자체에 힘을 빼는 일일 수 있다. 그것은 패배감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시나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결과에 이른다고 하여 이러한 사고 자체가 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일한 결과에 다다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정적으로 지난 일에 대한 회의가 의미를 갖는다.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언제라도 우리의 역사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을 반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는 너무 늦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언제나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처럼 그 당연한 귀결에 대해 다시 한번 새로운 가능성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없는 성찰 속에서 어떤 위험성을 감지하여 종래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를 일깨워야 하겠다.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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