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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06. 2020

발밑에 깔려있는 멸종의 누적.

낱장 일기22

다음 북토크의 주제가 기후 변화인지라 자료를 찾아보았다. 특히나 멸종에 대해 궁금해졌는데, 새삼 생각해보니 그 말의 무게가 상당하다. 멸종이라 함은 한 마디로 하여 이 세상에 한 계보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능이 생존과 번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약한 개체라 하더라도 멸종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의미로 멸종은 결국 자신의 종을 지켜내지 못한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멸종에 실패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하다만.

현재 국내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1급과 2급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멸종위기 1급은 실질적인 멸종에 가까운 개체이고, 2급의 경우 개체수의 급감으로 향후 멸종의 가능성이 높아진 야생생물종을 의미한다. 각 분류가 워낙 다양하지만, 총합으로 보자면, 멸종위기 1급은 60종, 멸종위기 2급은 207종이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267종의 이름들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 때문이었다. 고니, 참수리, 삵, 구렁이, 꼬마잠자리 등. 실제로 우리가 익히 들어본 종이 생각보다도 더 많았는데 정말 이대로 멸종한다면,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문학 작품에서나마 그 이름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론 그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매정하다면 매정하지만, 지금 나의 삶이 너무나 빡빡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아 인간이 아닌 다른 종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사실 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마저 그리고 더 나아가 나라는 개인마저 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던 걸 감안하면, 이 정도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하겠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고, 태어나고 죽는 것이 삶인데 그 개별 종의 사정을 들어보면 안타까운 바는 있으나 또 지구라는 거대한 생물시계의 입장에선 그다지 의미 없는 순환의 과정의 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우리의 발밑에 깔려있는 멸종의 누적.

그렇다면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종의 개수는 몇이나 될까? 문득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학계에 보고된 종의 개수는 대략 150만 종이다. 최신 정보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늘어났을 수도 있겠지만, 오차 범위가 크진 않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종의 개수이고, 전체 생물 개체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여기서 당신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멸종위기종이 늘어나는 마당에 종의 개수가 더 늘어난다? 오히려 줄어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이 넓은 지구를 겨우 150만 종이 나눠 살리는 없지 않은가? 위의 문장을 잘 살펴보면 150만은 어디까지나 ‘학계에 보고된 종’의 개수이다. 실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종까지 합친다면 이보다는 훨씬 많은 수의 종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대략적으로 1000만~1500만 정도로 추산하는데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어림짐작에 불과한 것이 우리는 지구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적으니 말이다. 물론 이 수치도 잘 봐야 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혀 구분할 줄 모르는 식물이나 벌레 등의 종수가 훨씬 많다는 것도 사실이니 저 숫자가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동물이 어느 날 우리 옆에 짜잔 하고 나타나는 일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이 있다는 사실은 멸종위기종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조금 무디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환경 파괴로 지구의 기후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지구는 살아남지 않을까? 다만 그때의 지구에 사는 종이 우리가 아닐 가능성은 있겠지만. 

써놓고 보니 무책임한 낙관 및 기후 위기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창피하네.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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