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장 일기28
죽음이 선험적일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증명 가능한 방식으로 경험해본 이는 없다. 이는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인간이 예외 없이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정작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니.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죽음 이전에 죽음을 경험해본 인간은 없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가까운 친구, 형제, 부모,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아무개를 포함하여 죽음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 그러니 죽음이 우리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지언정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 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의 죽음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수많은 죽음이 우리 곁에 산재해 있음에도 타인의 죽음은 결코 내 죽음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죽음은 언제나 궁극적인 절망, 극한의 두려움을 의미해왔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본다.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경험이 미리 체험 가능한 것이라면. 그래서 우리가 미리 우리의 죽음에 대해 선험적일 수 있다면.
죽음이 선험적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는 사라진다. 인간에게 있어 자유는 죽음이 미지의 영역에 속해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올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지만, 죽음 그 자체, 숨이 끊어지는 순간,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러한 죽음의 미지는 삶에서의 모든 결정론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우연과 확률로 가득 차고, 고정되지 아니하며, 유동적으로 흐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죽음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삶은 더 이상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게 된다. 밝혀진 죽음은 삶을 박제시켜 고정시키고, 고정된 삶 속에서는 자유를 말하지 못한다. 박제되어버린 나비에게 어떤 자유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불투명함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죽음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그 잠정적인 결론에 맞추어 삶을 살아간다. 잠정적인 결론의 가짓수가 무한하기에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결정론에서 벗어나 순간순간의 주체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니 죽음이 선험적일 수 없다는 것과 별개로, 죽음은 선험적이어서도 안 된다.죽음이 선험적이지 않아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그 반대의 경우에 생겨날 일들에 비하면 충분히 참고 견딜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에 목줄이 채워지는 걸 바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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