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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31. 2020

올해의 마지막에 당신께 드리는 편지

낱장 일기31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이 왔어요. 2020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요. 매년 한 해가 지나면 이런저런 말들로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곤 하지만, 이번 한 해는 우리에게 너무나 커다란 공통의 어려움이 있었죠. 여전히 당분간은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들 것. 달리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죠. 전염병의 무서움은 개인적인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고. 그보다는 죄 없는 이들이 내지르는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듣는 것과 타인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 심지어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조차, 서로에게 유리되어 유배의 감정을 느껴야하는 고독함에 전염병의 진정한 무서움이 있는 것이라고.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위태로워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어요. 가까운 이들과 전처럼 편하게 손을 내밀 수도 없고, 타인에 대한 인내마저 바닥나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곤 하죠. 어느덧 우리에게 여유란 사치품이 되어버린 걸지 모르겠어요.

이번 한 해가 특별히 힘들었던 것은 맞겠으나 유일한 힘듦이었던 것은 아니었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한 해를 견뎌왔고, 그때마다 크고 작은 흉터들을 마음속에 새겨왔어요. 그러니 삶이 원래 그런 것임을, 아파하고 견디고 때로는 웃어 넘겨야하는 것임을 인정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체념과도 같은 이 깨달음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걷고 있어요. 지난한 과정들을 반복하고 있어요. 마치 그것만이 할 수 있다는 듯이, 때때로 서로에게 옅은 미소를 건네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내고 있죠. 삶이 원래 그런 것임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바로 거기서 인간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어요.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모두의 숭고함을.

다가오는 한 해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나긴 겨울 끝 따스한 햇살이 얼어붙은 땅을 비추어 차갑고 어두운 감정이 녹아내린 자리에서 진한 녹음이 피어나는 그런 아름다운 해우. 그 얼마나 상쾌한 순간일까요. 갈비뼈 안 쪽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애틋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있어요. 내년이라고 해서 한 순간에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애써 괜찮을 거라 금방 나아질 거라 생각해보지만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앞으로도 힘든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죠.

내가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에요. ‘수고하셨어요. 정말로.’ 그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건넬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죠.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힘든 시기를 버텨내었고, 그 과정에서 몇 번쯤은 마음이 무너졌을 텐데. 내게는 당신이 겪은 그 모든 상처를 깨끗이 치료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나는 다만 내가 어루만질 수 있는 아픔이라도 가만히 쓸어보며 이야기하는 거죠. ‘수고하셨어요. 정말로.’ ‘버텨줘서 고마워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당신과 함께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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