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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Jul 01. 2024

말라가에 말라 가?

* 말라 가? = 뭐 하러 가지?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2월 마지막 주 말라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다음 유럽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이면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데요. 2021년 겨울 처음 떠난 뒤 근 3년이 되는 시간 동안 왜 저는 이렇듯 집요하게 유럽에서,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그것도 말라가라는 작은 해변 도시에서 정착하고 싶어서 안달인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40년이 넘게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 나고 자라, 수도 서울에서 밥벌이를 하고 살면서 제게 건강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항상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고, 잠을 줄여 공부해야 했고, 밤을 새워 일을 해야 했고, 그렇게 연봉도 오르고 승진도 하면서 잘 사는 줄 알았죠. 건강을 잃고 나서 이 또한 게으른 나를 극복하고 건강을 쟁취하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비참하게 패배했고, 그게 나의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듯이 2021년 겨울 유럽으로 떠났고, 유럽에서 지내는 3개월 동안 저는 건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나를 건강하게 할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기본은 매일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지내는 첫 3개월 동안 저의 생활은 아주 단순했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그날의 일정을 정한 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는 단순한 하루가 이어졌습니다. 같이 간 일행들이 있었지만,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의무도 맞춰야 하는 데드라인도 없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었고, 식당이나 박물관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여유로웠지요. 그렇게 여유롭게 살자 마음먹으며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 방식(lifestyle)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복잡한 도심 속에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과 꽉 막힌 도로를 보면서 나만 여유를 부릴 순 없는 노릇이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페이스대로 붐비는 지하철을 밀치고 타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빠르게 걷고, 막힌 길에서 투덜거리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분명 일을 줄이고,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만들었는데 말이죠.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눈은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기 일쑤였습니다. 먹는 음식, 수면 패턴, 운동량 모두가 눈에 띄게 나빠지거나 줄었어요.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분명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바꾸고자 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는 내가 나를 이겨야 했던 환경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에요. 한국에 돌아온 후 부지불식간에 저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점검하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도 내가 쟁취해야 할 목표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설명하고, 꼭 가봐야 하는 인스타 핫플에서 그들을 만나고, 내가 정하지 않은 각종 데드라인을 맞닥뜨리면서 점점 말라가의 자연과 평안을 잃어갔습니다. 그 빈자리들을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묻는 불안감과 열등감, 계속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가짜 식욕,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불면의 밤들이 채워갔지요. 그렇게 나빠진 건강은 만성두통과 피로, 소화불량에 어지럼증까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갑니다. 내가 나를 이길 필요가 없는 곳으로. 인간이 만들어놓은 모든 편리함과 유혹, 돈과 지위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이 없는 그곳으로 말이죠. 그곳에서는 시쳇말로 "뭣이 중헌"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손쉽게 접하는 배달음식과 돈만 있으면 바로 다음 날 무엇이든 배송된다는 것은 언뜻 보면 아주 좋은 환경인 것 같지만, 필요 이상으로 먹게 하고, 필요 이상으로 쓰게 해서, 필요 이상으로 일하게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만이 "꿈"이 될 수 있다면, 바닷가에 앉아서 일출을 바라보고, 1시간여를 걸어서 해변요가를 할 수 있는 하루를 꿈꾸는 것이 한심하고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연봉이 얼마인가 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하루를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말이죠.


그래서 말라가 갑니다.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건강해지는 그곳에 갑니다. 혼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뭣이 중헌"지 알고, 느끼고, 잘 살 수 있도록 그 터를 만들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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