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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Jul 16. 2024

혀와 입으로 만나는 프랑스

직접 느껴본 프랑스 식문화의 아름다움

오늘은 아주 특별한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시작이 된, 7월 14일 바스티유의 날을 맞아 프랑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어요. 8시 즈음 시작된 저녁식사는 자정을 넘겨서 끝났는데요. Apéritif - Entrée - Plat Principal - Salade - Fromage - Dessert로 이어졌던 특별한 시간을 풀어볼까 합니다.


화기애애함을 더해주는 - Apéritif

초대받은 집에 도착하니 정원 한쪽에서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분명 테이블과 의자들은 있는데, 식사라고 하기에는 가벼운 음료와 간단한 안주 - 견과류, 치즈와 잠봉에 멜론, 파테와 빵- 만 보이네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궁금해하던 제게 "Galaxy, Champagne?"하고 묻자 저는 기다렸다는 듯, "Oui!"하고 답합니다. 바로 이 Apéritif 시간에 초대한 호스트는 요리를 마무리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초대받은 게스트는 가져온 선물 - 보통 와인이나 디저트, 꽃 같은 - 을 건네며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이렇듯 '열다'라는 뜻의 라틴어 'Aperire'에서 유래된 아페리티프(Apéritif)는 본격적인 식사 전에 식욕을 '열어주는' 술이나 음료, 다과를 뜻하게 됐는데요.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둘러앉은 프랑스 가족들에게는 위장을 열어주는 그 이상의 시간이라 느껴졌어요. 그동안 못 나눴던 소식도 전하고, 어떤 주제이건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고, 우스꽝스러운 농담도 하면서 '마음을 여는 시간'인 거죠.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빈 잔을 채우고, 다과를 권하고, 접시나 잔을 내오길 거들기도 하면서 호스트와 게스트의 구분도 딱히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즐거운 다이닝 시간이 열렸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 Entrée

정식으로 식사를 할 곳은 루프탑에 준비되어 있었는데요. 고급 레스토랑 같지만 동시에 호스트의 취향을 잘 드러내어주는 식기와 그릇들로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게스트와 호스트가 아니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부족한 의자를 옮겨 오고, 준비된 음식을 나르고, 정원 테이블은 정리하기 시작했죠.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면서도 계속 대화를 나누며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여름은 해가 밤 10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지는데요. 빨간 노을을 뒤로하고 모두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했어요.


첫 앙트레(Entrée) 요리는 가스파초(Gazpacho)라 불리는 차가운 수프 요리였는데요. 본래 스페인 요리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도 특히 더운 여름에는 가스파초를 앙트레로 즐겨 먹는데요. '차가운 수프를 왜 먹지?'라고 하는 질문은 한 스푼 떠먹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혀끝에 닿는 살짝 시면서도 상큼한 맛이 입맛을 바로 돋워주더라고요. 입안을 정리해 주면서도 위에 준비 신호를 보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칵테일 새우요리와 삶은 달걀 요리가 앙트레로 나왔는데요. 조금씩 맛을 보면서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됩니다.

언제부턴가 이것저것 많이 먹는 뷔페(buffet)는 가지 않게 되었어요. 먹고 나서 무엇을 먹었는지, 맛있었는지 감흥은 없고 본전 생각에 많이 먹게 되기 때문에요. 그런데 이것저것 많이 먹는 듯 하지만 먹는 이유가 분명하고, 호스트가 조화를 고려해 선별해 이어지는 프랑스 요리는 그 하나하나가 개성 있고 조화롭게 어울려 먹는 즐거움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즐기는 - Plat Principal

오늘의 메인 요리, Plat Principal은 닭고기 요리에 카레 향이 살짝 풍기는 밥이 더해졌어요. 보통 고기, 생선, 또는 가금류에 다양한 소스와 곁들임 요리가 함께 제공되는 가장 풍성하고 중점이 되는 코스라고 하는데요. 닭고기를 요리하면서 나온 양념을 따로 담아 소스로 활용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와인! 보통 고기에는 레드,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을 마신다고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두 종류 모두 준비해 놓고, 취향껏 마시는 분위기였어요. 이날은 게스트 중 한 명이 특별한 레드 와인을 가져왔다 권하기에 레드와인을 마셨는데요. 음식과 잘 어우러져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하지만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 아니니까 적당히 조절하면서 마시는 건 당연하지요. 그리고 프랑스어로 '건배'는 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Santé'라고 합니다. 이때 중요한 팁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건배를 할 때는, 한국에서처럼 술잔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듯 하는 게 중요해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눈을 마주치면 저절로 웃게 되고, 좀 더 상대방과 친밀해지는 것 같아 좋았어요.


이렇듯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음식도 더욱 맛있고, 제대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이 날은 혁명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는 중에 Plat Principal을 즐길 수 있어서 더욱 특별했습니다.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먹고, 불꽃놀이를 즐기고,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와중에도 음식은 계속 시간에 맞춰 나오고, 10여 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테이블 매너로 따로 또 같이 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무리도 필요해 - Salade & Fromage

다 먹었으니 디저트가 나오나 했는데, 샐러드와 치즈가 나와서 당황했어요. 하지만 이 순서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고,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요. 그러고 보니 프랑스에 와서 평소 식사에도 식사 후 치즈를 꼭 챙겨 먹는 모습을 종종 본 것 같아요. 먹어 버릇하면 빠뜨릴 수가 없잖아요? 옛날에 어른들이 식사 후에 숭늉을 꼭 챙겨드시는 것과 같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요?


정리하면, 샐러드는 메인 요리 후 입맛을 정리할 수 있게 간단한 잎채소 중심으로 심플한 드레싱으로 준비하고, 치즈는 입맛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게 다양하게 제공이 되는데요. 치즈를 먹는 이유는 풍미를 더해주면서 미각을 만족시키고, 와인과 함께 식사의 즐거움을 연장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어쩐지 치즈와 함께 마시는 와인은 정말 맛있더라고요. 보통 가정에서는 오늘처럼 샐러드와 치즈, 두 코스를 합쳐서 한꺼번에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달달함으로 혀까지 행복하게 - Dessert

디저트,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데쎄흐(Dessert)'인데요. 그 발음만큼이나 프랑스에서 먹는 데쎄흐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디저트 하면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과일을 준비하잖아요? 하지만, 작은 과일 파이 한 조각과 산딸기에 크림까지 한 스푼 얹어지니 고급 레스토랑에 있는 것 같았어요. 함께 나눠먹다 보니 적은 양에 더 먹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디저트를 과하지 않게 먹은 것이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항상 그 맛에 대한 기억을 더 좋게 만들어주니까요.

데쎄흐를 마치는 시간까지 댄스 타임은 이어졌고, 행복했던 만찬은 자연스럽게 흥겨운 파티가 되었는데요. 10대 손자부터 80대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스타일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어요. 이렇게 프랑스 가족들과 함께한 아주 특별한 저녁식사는 즐겁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전통적으로는 디제스티프(Digestif)라고 식사 후 마무리로 브랜디, 코냑 같은 강한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요. 소화를 돕는다고 하지만, 요즘은 건강상의 이유나 시간상의 이유로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러한 생략에도 불구하고 장장 4시간 동안 식사가 진행이 됐습니다. 하지만 길고 지루하다는 생각보다 놀이동산을 다니는 것처럼 즐거웠는데요. 이번 식사를 통해서 저는 미식(美食)의 국가, 프랑스에서의 미식(美食)이란 음식만큼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울림은 자연스러운 배려와 관심에서 나온다는 것도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고급스러운 식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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