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 40대, 두 시작점에서 바라본 불안의 초상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이 물음은 단순한 비교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불안을 건드린다. 20대의 시작과 40대의 시작이라는 두 시간대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한쪽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고, 다른 한쪽은 절반쯤 건너온 다리 위의 재출발이다. 그러나 이 두 시점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둘 다 '시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과 마주한다.
20대의 불안은 '아직'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 아직 가보지 않은 길들, 아직 만나지 못한 자신. 반면 40대의 불안은 '이미'라는 단어가 지배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 이미 선택해버린 길들, 이미 굳어져버린 듯한 자아. 하지만 이 상반된 시제들은 결국 같은 현재 시점에서 만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실존적 물음 앞에서.
20대가 마주하는 것은 가능성의 역설이다. 무한해 보이는 선택지들이 오히려 선택 불능의 상태를 만든다. 사회는 이들에게 "넌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뭐든'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더 잔인한 것은 이 시기의 실패가 마치 영원한 낙오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잘 몰라도 괜찮다"는 위로는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사치처럼 보인다.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에게, 부모의 기대를 짊어진 이들에게, 사회적 시계에 쫓기는 이들에게 '모색의 시간'이란 허락되지 않는다. 젊음의 가능성은 그래서 때로 저주가 된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 그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초조함이 뒤엉켜 마음을 옥죈다.
40대의 불안은 더 교묘하다. 이들은 충분한 경험을 쌓았지만, 그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맞는가?" "지금까지의 선택이 옳았는가?" 하지만 이런 근본적 의문들을 드러내기는 더욱 어렵다. 사회적 위치, 가족에 대한 책임, 그리고 '어른'이라는 가면이 솔직함을 가로막는다.
40대가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닐까"라고 자문할 때, 그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의구심이자,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한 불안이며, 무엇보다 '변화'라는 것이 여전히 가능한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경험은 지혜를 주지만 동시에 유연성을 앗아간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의 깊이도 더 선명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불안이란 특정 나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조건에 내재된 본질적 속성이다. 20대의 불안과 40대의 불안이 다른 것은 그 내용이지, 불안 자체의 무게가 아니다. 각자는 자신의 시간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를 짊어진다. 그리고 그 무게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 오직 주관적 경험으로만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불안을 제거하려는 헛된 시도가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약하지 않다. 다만 불안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라는 고백은 그래서 용기있는 선언이 된다.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인간적 조건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멈춰 선 채 불안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그 순간 또한 길의 일부라고 인정하는 게 필요할지 모른다." 이 통찰은 목적지 중심의 사고에서 과정 중심의 사고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만, 사실 멈춰 서 있는 순간조차도 여정의 일부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질문할 수 있는 겸손, 배울 수 있는 열린 마음 - 이것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필요한 덕목들이다. 20대든 40대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서 조금씩 나아간다.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다.
결국 20대와 40대의 불안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동일한 물음 앞에서 만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누구도 대신 줄 수 없다.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시간의 무게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 20대의 1년과 40대의 1년이 다르듯,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도 비교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누가 더 무겁게 짊어졌느냐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며 걸어가느냐다.
불안은 삶의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빛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살아있고, 여전히 나아가고자 하며,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불안은 역설적으로 삶의 증거가 된다. 20대든 40대든, 우리는 모두 그 증거를 품고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표지 사진: Unsplash의 Lawless Ca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