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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 1시간 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by GALAXY IN EUROPE

매주 브런치에 글을 하나씩 쓰고 있다. 미리 써둘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일요일 밤 자정 전에 급하게 마무리하고 글을 올린다. 지금도 시간은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글을 안 쓴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의 약속인 만큼 하지 못했을 때의 타격감은 꽤 크다. 화면 속 커서만 깜박이고, 머릿속은 여전히 비어 있다. ‘이번 주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 긴장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 멸망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난 뭘 하고 있을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꼭 뭔가를 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5분 늦을까 조급하게 운전하던 나였는데, 지구 멸망 1시간 전에는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다니.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마지막 음식' 메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내게 있던 모든 고민이 날아가고,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사진: Unsplash의 Tobias Arweiler

그리곤 자연스럽게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이 보였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때 불던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마 힘든 오르막길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바퀴 아래 길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정도면 충분하다. 음악을 틀 수도 있고, 굳이 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움직이고 있고, 세상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자전거를 달리다 보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를 것 같다. 조용한 곳에서의 명상도 좋겠지만, 조금은 바람이 불고, 세상이 아직 살아 있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자전거로 도는 편이 지구 위에서의 마지막에 더 잘 어울리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는 말을 들었을 땐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듯도 한 것이, 미래를 위한 희망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저 오늘을 사는, 평범한 하루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마,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자전거를 탈 것이다. 그건 나에게 익숙한 움직임이고,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니까.

사진: Unsplash의 Johann Siemens

세상이 사라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저 지금 이 속도로 괜찮다. 조금 더 달리다 보면, 어쩌면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끝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 까지라는 마음으로.


이제 정말 마감까지 1시간도 남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지구가 멸망하든, 월요일 새벽이 오든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글을 쓴다. 그게 내 방식의 사과나무 심기이고, 내 자전거 타기이다. 그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나답게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표지 사진: UnsplashGreg Rose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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