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무 Jun 04. 2020

브랜드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

오키나와 노부부에게 배운 지혜

 얼마 전 남편과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여기는 집값이 얼마나 해요?" 우리가 차에 오르자마자 기사님이 말을 건넸다. "하하 글쎄 잘 모르겠네요." 하루의 일과를 KB부동산 시세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남편이지만 그렇다고 얼마라고 얘기하기도 뭐했던지라 대충 둘러댔다. 남편의 아쉬운 대답을 개념치 않고 기사님은 갑자기 TMI를 방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를테면 본인은 시립대 근처의 래미안에 살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고도 했고, 사실은 본인이 조합원이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나의 마음을 울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나도 래미안 같은 곳에 살아보나 했는데 그런 날이 오더라고요."

브랜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침 우리가 탄 차는 동네 대장주 아파트인 래미안을 지나고 있었다.

 



 여행은 자고로 멀리 길게 떠나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나인데, 최근 몇 년 간 남편도 나도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들 중 오키나와를 떠올렸고, 그 해 여름 우리는 오키나와로 떠났다. 숙소는 호텔 2박, 애어비앤비 2박으로 나누어서 묵기로 했고, 결과적으로 애어비앤비에서의 시간 덕분에 우리는 오키나와까지 사랑하게 되었다. 애어비앤비는 오키나와 남쪽에 자리한 곳이었는데, 주인은 도쿄에서 귀촌한 노부부였다. 한류의 팬이기도 했던 노부부는 휴일이면 떡볶이를 먹으러 나하 시내 한식집을 찾아가곤 한다는 귀여운 커플이었고, 그런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우리 부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소박한 단독 주택이지만, 곳곳에서 집에 대한 부부의 정성과 애정이 느껴졌다. 식물과 동물 모두를 배려한 마당, 프라이빗하지만 배타적이지는 않은 구조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외관. 우리 부부가 꿈꾸는 공간과 너무나 닮아있는 곳이랄까.


노을 맛집이기도 했던 노부부의 집


 노부부의 집에서 우리는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마치 집주인 노부부처럼 우리는 은퇴한 부부의 일상도 흉내 내 보았다. 우선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그저 눈이 부시면 눈을 떴다. 그리곤 알맞은 규모의 주방에서 정갈한 가정식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식사 후엔 산책을 떠났다. 동네를 오가는 고양이들과 인사도 하고 둑에 앉아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노부부는 도쿄에서의 삶에 지쳐서 은퇴하고 이주했다고 했는데, 오키나와의 삶의 속도가 본인들에게 잘 맞았다 했고, 이처럼 서정적인 곳에서 살아간다면 치열했던 젊은 날의 피로감을 정말 말끔하게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 앞바다는 아이들의 놀이터




 사는 곳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경제력을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고 가치관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서울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 열풍이 불었고, 그 중심에는 신축 브랜드 아파트가 있었다. 과거 '차'가 성공의 증거가 되었다면, 이제는 '브랜드 아파트'가 성공의 증표로 자리 잡았다. 고백하자면 나와 남편도 이 기준에 따라서 집을 선택했다. 특별히 부동산에 관심이 없었지만, 나의 이직 때문에 출퇴근 거리를 줄이고자 이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했었어서, 부모 도움 한 푼 없이 대출을 잔뜩 끼고 브랜드 아파트를 마련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지금 집도 매우 만족스럽다. 헬스장과 골프장은 물론이고 독서실까지 겸비한 단지 내 커뮤니티, 친절한 생활지원센터, 단지 내 조경 등 브랜드 아파트의 장점도 여실히 느낀다. 하지만 어딘가 아쉽기도 하다. 남편은 동식물을 좋아해서 마당 있는 집을 원하고, 나는 자연친화적인 동네에 있는 집을 선호한다. 이런 우리는 아무리 남들이 선망하는 브랜드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이 집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꼭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

 

 부동산 고수인 지인은 마용성을 거쳐 최근에는 강남 신축 브랜드 아파트에 입성했다. 남편과 나도 가끔 우리의 다음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다음번에는 남들의 기준이 아닌 우리 부부의 기준에 따라보려고 한다. 자신들을 닮은 도시 오키나와를 선택한 애어비앤비 노부부처럼, 우리도 우리를 닮은 집을 선택해 보려고 한다. '나 래미안에 살아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말하기에 궁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이 사는 집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갈 집이다. 마당에서 반려견과 교감하고, 차를 마시며 산세를 감상하면서 우리 부부가 살아갈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좀 더 우리 다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날이 멀지 않은 미래이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학 말고 이직을 택한 직딩의 후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