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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무 May 17. 2020

이직 후 첫 3개월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가는 시간

 그 옛날 웅녀가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버틴 시간이 100일이고, 신생아가 태어난 후 여러 질병의 위험을 이겨내고 무탈하게 성장한 것을 처음 축하하는 기간도 100일이다. 경력 입사자도 마찬가지다. 100일이라는 시간은, 우선은 버텨내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직도 여러 종류가 있다. 추천인 등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소개로 이직한 경우, 특히 새로운 직장에서도 그 분과 같은 조직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비교적 다소 수월한 케이스다. 그러나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했다거나 경력 공채에 본인이 지원하여 이직했을 때는 난이도가 좀 더 높은 케이스인데, 새로운 직장 사람들은 아무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덩이인지 골칫덩어리인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바로 이직 후 첫 3개월이다. 그들이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갈 수 있게끔, 그것도 이왕이면 긍정적인 이미지, 혹은 본인이 원하는 본인의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는 데이터를 쌓아갈 수 있게끔 행동하는 것이 그 이후의 직장생활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드는 지름길일 것이다. 업무적인 것이든 비업무적인 것이든 나의 120%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이직이라는 것이 사실 이런 종류의 피곤한 과정도 수반하기 때문에 누군가 이직을 고려할 때에는 자신이 기존 직장에서 쌓은 데이터를 모두 버리고 도전할 자신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나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하간 나는 다음 주까지 보내면 첫 3개월을 채우는 셈이다. 이번이 첫 이직이 아니고(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에 어느덧 4번째 회사가 찍혔다),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좀 버거웠다. 이직을 많이 했지만 사실은 적응에 능한 종류의 사람도 아닐뿐더러, 특히 나를 숨기느라 나답지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침잠이 많은 나는 전 직장에서는 늘 9시 직전에 가장 늦게 출근했고, 체력이 달려서 충전이 절실해 늘 가장 이른 퇴근을 했다. 업무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면 근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나처럼 워라밸을 중시하는 상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나 새 직장에선 어쩐지 눈치 보지 않을 수 없고, 지금은 사무실에서 가장 빨리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상사 중에 근태를 중요히 생각하는 꼰대가 있다면 더...). 물론 휴가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코로나 시국이라 어차피 휴가를 쓰고 갈 곳도 없으나, 업무적 성과를 보여주고 조직이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된 이후에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역시 꼰대 마인드에서 비롯된 이직 문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사실 조직도 나에 대해 평가 하지만, 나 역시 조직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 100일 동안, 나 역시 이 조직이 나에게 fit 한 곳인지 알아보며 조직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이 관계에서 나만이 약자인 것처럼 조직에 나를 맞추기만 할 필요는 없겠으나, 내가 당장 이 조직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다른 일을 할 것이 아니라면, 여하간 조직이 나에 대한 긍정적인 데이터를 쌓게 하는 시간이 당분간은 필요하긴 한 것이다.


 정말이지 이직은 너무 피곤한 일이다. 이 고된 시간을 잊고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또 이직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를 믿을 만한 데이터를 주며 외롭게 자신의 하루를 채워가는 나 같은 이직자들, 다음 주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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