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가 내게 알려준 것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구절이다. 우리는 대개 행복하고 때로 불행한 커플인데, 불행 유발 요인은 원가족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생각의 차이였다. 평생 부모 뜻을 거슬러 본 적 없는 남편과 항상 부모 뜻을 헤아려 본 적 없이 살아온 나는 참 달랐다. 또한 남편이 그리는 가족이 본인 원가족의 테두리 안에 배우자인 내가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다면, 내가 그리는 가족이란 나와 남편이 각자의 원가족에서 분리되어 우리의 테두리를 따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우리였기에, 결혼 초반에는 시가 문제로 제법 싸우기도 했다. 효자가 갑자기 불효자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불효녀가 갑자기 효부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행복하지 않았고, 이혼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한데 마침 미리 예약해둔 여름휴가가 다가와서 말하자면 이혼 숙려기간과도 같은 때에 다소 어색하게 여행을 떠나게 됐다. 에라 모르겠다. 살지 말지는 다녀와서 결정하자, 우리의 미국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요세미티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땅이다. 기차나 버스도 오간다고 하지만 워낙 험준한 자연 속에 위치하기 때문인지 큰 맘먹고 가야 하는 곳이다. 게다가 폭설이나 산사태 혹은 산불 등으로 요세미티로 가는 길이 폐쇄되는 때도 왕왕 있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하지만 트래킹이나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 국립공원 마니아, 일반 가족단위 여행객까지, 요세미티를 인생에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으로 뽑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나 역시 윈도우 배경화면 속의 요세미티를 보면서 여행을 꿈꿔왔는데, 이렇게 뻘쭘하게 오게 될 줄은 몰랐던 거다.
꼬부랑 길을 백개쯤은 넘은 것 같을 때에야 국립공원 입구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렵게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푼 우리는 슬렁슬렁 자전거를 타며 국립공원 단지를 둘러봤다. 과연 이전에 본 적 없는 스케일의 자연이었고, 너무 감동한 나는 평소라면 엄청 호들갑을 떨었겠으나 마치 동행 없는 여행자처럼 조용히 감탄했다. 그리고 찾아온 밤, 우리의 숙소는 야외 텐트 중의 하나였는데, 이런 열악한 잠자리는 처음이었을뿐더러 생애 가장 강력한 추위에 직면했다. 캠핑 초보자였기 때문에 준비도 부족했고, 보온 장비 없이 그 악명 높은 요세미티의 밤을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나와 남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기 위해 밤새 몸을 밀착했고 서로의 온기에 의지 했다. 아, 그날따라 밤은 또 어찌나 길던지. 분명 어색하고 뻘쭘했는데, 1cm 틈도 허락하지 않고 서로 살결을 맞닿았다.
날이 밝았고, 간밤의 사건 때문인지 어지러웠던 마음도 조금 명쾌해졌다. 우습지만 그날 밤은 우리에게 생존의 '위기'였고,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위기가 또 오더라도 남편과 함께인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우리는 어떤 이슈(정확히는 시가 이슈)에 있어선 쉽게 교집합을 찾기 어려운 부부지만, 그래도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는 교집합을 더 많이 가진 부부였다. 그렇기에 요세미티에서 한 밤 중에 직면한 강추위이든, 혹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여러 난제들이든, 통제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얻었달까.
얼마 전은 결혼 3주년이었다. 나는 아직도 요세미티가 우리를 위해 그날 밤을 준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세미티는 너무나 험준하여 쉽게 허락되지 않지만, 그래서 요세미티 안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 한 밤 중의 강추위는 애교고, 누군가는 낙상을 하거나 조난을 당하고, 심지어는 곰을 만나기도 한다. 원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기에 위기에 함께 대응한다. 어쩌면 관계라는 것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좋은 관계'는 쉽게 허락되지 않지만,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함께라면 위기를 통해 좋은 관계로 가는 길이 결국에는 열리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가끔 싸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요세미티의 밤을 떠올려 볼 것이다. 어느 부부에게나 그런 공간이 하나쯤 필요한 것 같다. 아직 찾고 있다면, 요세미티로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