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을 내려놓고 함께 발리로 떠났다
남편은 불행한 은행원이었다. 네임벨류 그리고 연봉과 복지. 다른 이는 번듯한 직장인으로 여겼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누구보다도 연봉이 높았을지는 몰라도, 누구보다도 만족도가 낮은 듯했고 불행해 보였다. 지점에 근무할 때에는 하루 종일 고객들을 상대하며 영업을 하다가 셔터를 내리고는 밀린 업무들을 처리했다. 본점은 다를까 싶었는데 쳐내도 쳐내도 몰려오는 업무들을 해치우고 나면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있곤 했었다. 때때로 동기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정을 나누기도 했지만, 은행원들은 결국 남편과는 소위 '결'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결혼 전에 이미 남편의 퇴사가 계획에 있었고, 그저 본인이 결정할 때를 기다렸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1년 반쯤 지났을까, 결국 남편은 퇴사를 선택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둘 다 금수저가 아니기 때문에, 평생 우리의 삶은 우리가 100% 책임져야 한다. 결혼 자금은 물론이고 내 집 마련, 출산과 육아 혹은 사업 등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오로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도 연봉이나 복지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더더군다나 next가 정해진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비물질적인 것, 이를 테면 일을 통해 얻는 소소한 보람과 재미, 퇴근 후 함께 먹는 저녁밥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안전 가옥을 벗어나 도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남편의 퇴사 여행지로는 발리가 낙찰되었고, 한 달 살기에 편승하고자 함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재 충전의 시간을 한 달은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여하간 한 달 살기를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난 당시 재직 중이었기에, 남편이 먼저 떠나 있고 나는 휴가를 영끌해 2주 일정으로 합류했다. 자유인이 되어보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발리에서의 일과는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잠시간 멍을 때리다 얼마간 책을 읽었다. 그리고는 요가를 가거나 수영을 했다. 저녁에는 동네 산책하다가 오며 가며 눈여겨본 레스토랑서 맛난 음식을 먹었다. 9시면 숙소 침실에 누워서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다가 이내 곧 잠에 들었다. 친구 하나는 그런 말을 했다. 본인이라면 본인의 퇴사보다 남편의 퇴사가 더 불안하고 걱정될 것 같다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별로 남편이나 남편의 직장에 의지하지 않을뿐더러 남편의 직장보다는 나의 직장이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기로 했다. 남편 본인은 인생 첫 일탈에 꽤나 불안하고 걱정됐을 텐데, 옆에서 다른 사람이 들들 볶아서 좋을 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발리의 지진도 불사하고,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발리를 느꼈다. 발리는 과연 퇴사자들의 destination이 되기에 모든 것을 가진 도시였으니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결코 충분하진 않았겠지만, 발리에서 얼마간 자유인이 되어서 온전히 본인을 돌아본 시간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남편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스타트업에서 서른여섯에 새로운 시작을 한 남편은, 은행에 다닐 때에는 커리어 패스나 인생의 계획 없이 그저 버텼다면, 지금은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위해서 버티는 시간을 보낸달까. 우리네 인생이 이렇든 저렇든 버티는 삶인 것만은 변함없지만, 무엇을 위해 버티는지, 그것이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에 따라 버티는 것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내가 보기에, 지금 남편은 과거처럼 때때로 불행해 보일지 몰라도 과거만큼 언제나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정도면 됐다.
자유인이 되어보는 시간은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자유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떤 직장의 어느 대리, 누군가의 남편과도 같은 타이틀을 걷어내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목소리를 따른 선택은, 비록 연봉과 복지는 낮을지 몰라도 결코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선택은 아니다. 꼭 퇴사 후가 아니어도 좋고, 짧은 휴가나 여행이어도 좋다. 종종 자유인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자. 그곳이 발리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