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r united Jan 06. 2023

정현의 조각과 시간의 이빨

성북구립미술관 2022 기획전시《시간의 초상: 정현》展 리뷰


정현의 조각과 시간의 이빨     



글 조주리(전시기획미술평론)     



눈 깜짝할 사이 방금 본 것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는 낯선 존재로 대체되는 오늘날, 미술이란 무엇을 남기고 지워내는 일일까. 작가는 매 순간 휘발되어, 벌써 과거가 되고 마는 시간의 조각을 어떻게 붙들어 관객 앞에 세우고, 때로 시간의 방향과 층리를 뒤흔들어 일상의 시계를 재조정하는가. 재난과 참사의 시국에도 무서운 기세로 밀려오는 시각예술의 한 가운데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전시와 전시 사이를 바지런히 뛰어다니는 순례객 노릇을 자처하면서도 전시가 중계하는 작가의 사유, 이론, 철학이 닿는 곳이 어디일지, 어떻게 순환되고 망각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종종 막막해진다.      


몇 년간 마주해 온 전시의 서사 전반을 되짚어본다. 도래할 인류의 미래의 풍경을 묵시록적으로 펼쳐내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인류세의 물질 과잉과 정신적 결핍을 진단하는 자기반성의 언어가 전시의 문법에도 반영되는 시간이었다. 이는 재난 시기에 두드러진 경향이 아닐까 싶다. 미술 매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 억눌린 주체들의 사적 서사, 인공지능과 디지털 문화와의 착종 등 다양한 실천이 동시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결국 여러 쟁점이 수렴되고 합류하는 지점에 인간 존재와 역사적 시간에 대한 새로운 규정과 해석에 대한 공유된 목마름이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전시에 곧장 들어서기에 앞서, 수상한 시대의 풍경과 전시생태의 기류를 자꾸만 톺아보고, 가늠하게 된다.      


작가 정현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 정현> 展을 만난 시점은 전시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여전히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 회복하고 싶은 미련이 교차하던 때였다. 관람객으로서 전시가 담고 있는 이미지와 서사의 과잉에 마음이 부대끼는 시점이었고, 기획자로서 마땅한 답을 내놓기도 어려웠던 탓이다. ‘작업의 역사’라고 칭할만한 지속적 호흡과 변화의 역동성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창작자의 전시를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드물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각가 정현이, 그의 전시가 더욱 반갑고, 귀하게 다가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간 실존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기획의 언어가 상투적 수사일 리 없다는 기대를 담아 전시장 안으로, 시간의 웅덩이나 다름없는 그 속으로 성큼 들어가 본다. 그간의 작업을 망라한 회고전으로 보이는 이번 전시는 일생에 걸쳐 전개된 작업 역사에 대한 포괄적 수사인 동시에, 시대와 공명하는 예술에 담긴 시간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후반의 작업부터 올해 제작한 작업까지 총 100여 점에 이르는 드로잉과 조각 연작, 설치 작업, 공공조각 작업은 그 자체로 작가의 예술적 일대기를 증언한다.      


전시는 여러모로 고전적이고 경우에 따라 해설적이기도 하다. 시기와 매체별로 알맞게 편집된 구성은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 미술사적 검토를 거친 전작 도록) 한 권을 보는 느낌이다. 작가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영상과 작업 노트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관람의 ‘고전성’을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나는 전시 관람과 작업을 설명하는 방식에 익숙한 교양인이 아니라, 태어나 처음 작가의 조각을 본 사람처럼 생경한 눈과 귀, 몸이 돼보기로 한다. 조각가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아틀리에를 처음 가본 극작가 장 주네(Jean Genet)처럼 말이다. 이미 한 세계를 일군 작가의 전시지만, 이름이 주는 세속적 무게와 광휘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다. 작업에서 작업으로, 한 시기에서 또 다른 시기로 이어지는 통로를 거닐며, 정밀하게 짜여 있는 전시가 누락했을지 모를 어떤 도약의 지점을, 설익은 고민과 갈등의 순간을 상상해 보고, 이제야 막 다다른 작가의 사유에 공감해 보려 한다.     


작가가 펼쳐내 보이고자 한 ‘시간의 초상’은 누군가의 시점으로 새롭게 오인되어, 때로 엉뚱한 감상을 낳기도 한다. 나에게 정현의 조각은 ‘시간의 이빨’ 같은 것이다. 날카롭지만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물질의 양태란 미술사에 기록된 창조물이기에 앞서, 오랜 시간 풍화된 옛 유물, 어느 날 우연히 발굴된 것 같은 화석, 이름 모를 사자(死者)들의 뼈, 극악하게 살아남은 땅속의 이빨 같다. 모든 것이 산화되고 부패된 그 속에서 홀로 남겨진 단단한 것들은 존재의 부재를 증거하는 알리바이이자, 세워지고 스러지기를 수없이 반복해 온 도시문명의 잔해처럼 보인다. 그것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조각들에 대한 투박하지만 솔직한 인상이다. 뾰족하게 갈리고 으스러진 것들은 실상 육중했던 것일 테고, 다 타버린 것 같은 얄따란 몸체 또한 한때 기운생동으로 가득 찬 존재였을 것이다. 좌대와 벽체 위에 올려둔 조각의 군집과 액자 속에 끼워진 드로잉 모음, 문명 박물관의 수장고 물품처럼 놓인 조각의 파편이 모두 그렇다.      


정현의 작업은 멀다. 작품 가까이 관객을 불러 모으는 다정함보다는, 현존하는 물질임에도 되레 극명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거리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적용된 재료의 질감과 온도, 제작 공법, 작품의 규모, 부분과 전체 사이의 구성 요소들은 지극히 물리적인 조건이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요소가 더해지면서 어떤 심리적 효과를 파생한다.      


“조각상들은 시간의 밑바닥, 모든 것의 기원에 자리하여 어떤 동요에도 꿈쩍하지 않는 절대부동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다가서고 물러서기를 그치지 않는다. 조각상들은 눈으로 익혀 가까이하려 할수록 까마득히 멀어지면서 갑자기 상과 나 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펼쳐진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방문하여 만나게 된 작업에 대해 적은 기록 중 일부이다. 정현 작가의 전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래전 읽은 그의 책이 떠올랐다. 전시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정확히 환기시키는 또 다른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내가 느꼈던 아스라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움이 될만한 이론서나 정현의 작업에 대하여 서술한 문장을 더는 찾지 않았다. 촬영된 사진을 보는 대신 머릿속에 남은 잔상과 잔영들을 그대로 떠올려 보았다. 전시장을 떠나는 순간 몸에서 멀어진 작업들을 내면으로 불러 모으는 과정이자, 누군가의 시간을 새롭게 옮겨오고자 한 나름의 회고법이다. 몸으로 느꼈던 것을 지식으로 가두지 않고, 실존과 존재에 관한 서술이 헛돌지 않도록 말이다.      


때로 전시란 한 분야에서 고단한 경주를 마친 외로운 이들에게 주어지는 트로피, 알맞게 편찬된 영웅담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시의 또 다른 얼굴은 한 개인이 물질과 벌였던 치열한 사투의 연대기이자, 작가가 도달하고자 한 정신성의 실체, 즉 그것이 얼마나 단절적이며, 때로 퇴행적이며, 남루한 고민들로 가득한 시간이었는지에 대한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말끔하게 정리되어 공개된 전시의 뒷모습이란 작가가 돌파해온 지난 시간에 대한 분투기, 기어이 발굴하고 해체해 낸 세계관의 뼈대, 후속 세대에게는 미약한 상상에 의존하며 가까스로 해독해야 할 지난 세기의 기록일 것이다. 전시를 보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어렵고 불완전하다. 작가의 고민과 궁리가 언제나 열려있는 것처럼 말이다. 


철도 침목, 파쇄공, 콜타르 드로잉들. 시간이 압축되고 뭉쳐져 만들어진 더께, 눌리고 부식된 자국과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물성의 선택과 탐구. 어느덧 하나의 양식이 된 조형적 발현은 아주 오래전에 그려본 미래 풍경, 제작 당시의 가장 동시대적 실천, 지금은 근 과거의 정전이 되어 작품 안에 시간의 풍경을 담게 되었다. 시간의 사슬 속에 결박된 인간의 외로움과 존재의 비체(卑體), 노동의 고단함, 문명의 비루함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오늘날의 관람객에 의해 새롭게 다가갈 것이다. 이것이 꼭 작가의 의도대로 수용되는 것도, 매번 갱신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 그 자리에서 쏘아 올린 작품에 대한 최종적 수신 맥락과 해독이 때마다 자리바꿈 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을 테다. 작가와 작품, 작품과 세계, 세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가 다가서고 멀어지기를 그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강인하게 붙들고자 했으나 매 순간 흔들리는 시간의 비밀스러운 초상을, 오늘 가장 새로운 마음일 작가의 자화상을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또 기억한다.  



정현, <무제>, 30.5x23x33.3(h)㎝,석고,1998 [사진=성북구립미술관]
정현, <시간의 초상> 설치 전경, 2022, [사진=성북구립미술관]








성북구립미술관 홈페이지

https://sma.sbculture.or.kr/sma/exhibition/past.do?mode=view&articleNo=20401

큐레이터 전시 소개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Q7BwBupcqU

작가의 이전글 김영은 : 소리의 틀, 청취의 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