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작가 이해강으로부터 들었던 도깨비 작업의 서사는 그 어디서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야기로, 이따금 나는 뵌 적도 없는 그의 가족 구성원들, 특히 작가의 아버지를 멋대로 상상하며 제주에서의 단란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한 차례의 인터뷰와 아주 가끔 오가는 연락 이외에는 별다른 교분을 갖고 있지 않은 작가의 가족사를 고려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작가에게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자처하여 짊어진 가족의 예술적 유산과 홀로 분투하고 있을 양가적 마음, 그리고 그의 고된 여정이 퍽 신경 쓰인다. 원고 작성의 출발점에 있는 나 역시 작가 이해강처럼 어떤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해강의 작업에 대해서 미술 비평을 하는 것이 옳을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각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지 말이다.
요약하자면, 2022년 올 한 해 이해강은 작고하신 아버지께서 남긴 제주도의 도깨비 공원에 대한 전면적 재조사와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회화 시리즈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남아 있는 파편적 자료와 인터넷의 기록을 짜 맞춤하여 들여다본 도깨비 공원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손수 조성하고, 가족이 주체가 되어 운영해온 이곳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상업적 테마파크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는 한 개인의 예술적 집념과 조형적 욕망에 기대어 유지되었던 일생일대의 예술 실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도 ‘커미션’ 한 바 없지만, 기어코 확장하고 굴러가야만 하는 ‘온-고잉(On-Going)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도깨비 공원의 개장을 위해 쏟아 부었던 예술 노동과 잠시 동안의 절정기, 그 이후의 지난한 흥망성쇠 과정 안에는 ‘닮은 듯 다른’ 父子의 삶이 쌍곡선처럼 펼쳐져 있다. 17년간 엄청난 양과 다양한 양식으로 증식하고 번성해 온 도깨비 조각상은 아버지 삶의 물리적인 증거물인 동시에, ‘다른 듯 닮은’ 아들 삶과의 이항(二項)관계를 보여주는 매개물이다. 이해강은 디자인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이어 시각 디자이너로서의 진로를 택했지만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씬 안에서 그래피티 작가로서의 활동에 집중했고, 군대 전역 후 기존의 작업 양식으로부터 차츰 떨어져 나와 현대 미술가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전환기를 통과해 나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유수의 갤러리 공간을 통해 선보였던 초기작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 일종의 자화상 모음이었다고 생각된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한 수직적 위상과 수평적 카테고리의 경계 바깥에서 배회하는 존재, 대중 문화에서 상투적으로 묘사되는 빌런 캐릭터, 꼭 닮아 있지만 은근한 우열과 갈등이 내재된 듀오와 같은 작업의 소재는 작가의 내면을 투사하기에 적합한 장치였다. 내부에서는 외부인으로 오인되고, 외부적 시선에서는 여전히 경계에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존재들은 개인의 열등감과 소외의 감각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한 자신감과 도전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진영을 자유롭게 오가며 몹쓸 장난을 치고, 요술과 혼돈을 부리는 ‘트릭스터(Trickster)’ 같은 존재다. 마치 신화와 전설 속 도깨비처럼 말이다. 남몰래 도심의 골목 깊숙한 곳에 그래피티 스프레이로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는 저항의 행위도, 디지털 툴을 사용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뚝딱 창조해내는 클라이언트 잡(Client Job)도, 캔버스 표면 위로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경험과 본능적 감각을 이리저리 분사해내는 현대미술 작업도 크게 보면 모두 그런 일이다. 아버지 트릭스터가 매일 새로운 도깨비를 만들며 하나의 세계를 일구었던 것처럼, 그 역시 장난과 요술, 창조적 혼돈이 (거의 유일하게) 통용되는 오늘날 미술의 세계에서 자신의 트릭을 하나 둘 실험하는 중일 것이다.
한편, 이해강의 스튜디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커다란 화면의 회화 작업이다. 전형적인 화가의 작업실 정경인가 싶지만, 이내 그가 제작 중인 온갖 이미지에 담긴 생경함과 야생적 에너지가 훅 들어온다. 일종의 ‘근본 없음’과 ‘어디서 본 적 없는 느낌’, 긍정적 의미에서 오염되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에서 오는 낯선 감상일 것이다. 대형 회화의 도상은 명백히 도깨비들이다. 3차원상의 조각을 평면으로 바로 옮겨오는 대신, 작가는 이를 디지털 페인팅의 소스로 변환한 후, 다시 캔버스 위에서 3차원적인 환영을 부여하는 삼중의 과정을 거친다. 컴퓨터 툴로 만든 애니메이션상의 프레임을 화면 위에서 중첩하는 방법은 미래주의 화파에서나 보던 고전적인 환영이어서, 일종의 매체적 유머 내지는 일부러 역-설계한 제작 공정임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적 기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깨비같이 그려내는 도깨비 그림’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회화 작업과 연결되는 순환적 구조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도깨비 조각상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을 단순한 기록 용도가 아닌 자신만의 예술적 실천으로 이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변환된 매체가 3D 버전의 VR 프로그램일지, 게임 엔진을 활용한 일종의 플레이스테이션일지, NFT 방식의 도깨비 캐릭터 이미지일지 내용의 활용과 변주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 과정에서 세상사의 얄팍한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서야 할 숙제도, 작가로서 예술적 판단을 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다. 도깨비 공원 건립과 폐쇄에 이르는 17년의 역사를 고증하는 도깨비 조각상은 실존하는 작품이자, 작가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이며,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해야 하는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일 테다. 조건 없이 받은 선물이지만, 그 속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창조적 계승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수백 점도 넘는 도깨비 조각상의 면면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각각의 캐릭터들을 분류하고 확인하여 이를 다시 디지털 콘텐츠로 옮기는 일은 장례 의식과 고고학자의 일, 그리고 미술관의 학예 업무를 닮아 있다. 이해강은 이 사이 어디쯤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자신의 작업으로, 공공의 서사로, 가상의 이야기로 이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꽤나 버거워 보이는 작업의 무게는 꼭 필요한 핵심만을 남긴 채, 언제 어떻게 휘발되어, 오늘날의 맥락에 맞는 새로운 도깨비상으로 귀환하는 것일까. 묻지 않아도, 염려하지 않아도, 관객보다 애타는 사람은 작가 자신일 것이다.
유물이 되어버린 수백 점의 도깨비 조형물과 디지털 모션 그래픽 사이의 거리는 제주도와 서울, 아버지와 아들, 공원과 갤러리 사이만큼이나 아득해 보인다. 다만 젊은 아버지와 소년, 나이 든 아버지와 청년 아들, 작고한 아버지와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달려 나가는 젊은 아들, 그 둘 사이에 흘렀던 겹겹이 시공 속에 여지없이 도깨비가 있다. 도깨비 공원이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와 관련된 현실의 곤란한 일들을 애써 묻어두었던 몇 년간은 역설적으로 이해강이 작가로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고, 몇 번의 굴절을 딛고 나름의 성장을 일군 시간이다. 온통 그래피티뿐이었던 20대 초반을 지나, 컴퓨터 프로그램 기반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다양한 이미지 생산에 전력질주했던 시기를 거쳐, 물감과 캔버스로 매체를 옮겨오게 된 일련의 과정을 짐작하며 되짚어 본다. 그 과정을 ‘필연적 도약’이라고 한다면 그래피티와 회화, 디자인과 미술의 위상을 나누는 일이 돼버릴 테고, ‘우연한 모험’이라고 부른다면 작가의 고뇌와 예술적 분투를 한낱 우연성에 가둬버리는 셈이어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풍부한 작업의 예증과 서사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을성 싶다.
다시 도깨비다. 작업 현장에서 마주한 이해강은 그야말로 도깨비 같은 풍모와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묘사하기에 적확한 말을 찾기는 어렵지만, 도깨비 공원에 설치되었던 수많은 도깨비상 중 하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진난만한 활달함과 장난기 가득한 전래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 그래피티 스프레이를 벽에 뿌려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어디론가 휙 사라져 버릴 같은 현대판 도깨비. 지난 전시에서 선보인 회화 작업들과 지금의 작업을 연결하여 살펴보면, 자신이 세운 개념과 방법론을 믿고 꿋꿋하게 페인팅을 해 나가는 순간이 막 열린 것 같다. 도깨비처럼 작업을 해 나갈 일만 남았다. 그 길에 저항과 집념, 해학과 환상이 찰싹 들러붙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