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라 Mar 03. 2017

아무말 쓰기의 역사

001. 일기로 괴로움을 마주하다. 

 


작년 일기장은 새것인 채로 헌것이 되었다. 아까워 올해 써보려 했지만 다 적힌 날짜를 일일이 지우는 것도 고되게 느껴졌다. 올해의 다이어리는 그간 사다 쟁여두기만 했던 플래너에 가까운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정말 일기를 쓸 수 있는 란이 날짜와 함께 한 바닥 씩 정해져 있다. 사실 작년에 책을 사고 받은 도라에몽 다이어리와 거의 유사하다. 문제는 그 도라에몽 다이어리를 12월에서야 비닐을 뜯어본 것이다. 속을 보지 않고 묵혀버린 아쉬움에 내뱉은 한숨의 깊이가 아직도 느껴진다. 지금의 일기장은 까만색 비틀즈 다이어리이다. 이것도 알라딘에서 구입했으니 아마 도라에몽에서 껍데기만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새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며칠 안 되었다. 나는 아무말을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한 공포심도 큰 편이다. 그 아무말들이 종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마치 나를 위로하듯 누워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찌르는 어떤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릴 적의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아무말을 적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아주 어려서부터인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작문에 대한 중요성을 엄청나게 강조하셔서 타자기로 적힌 오래된 자료로 일기 쓰는 것을 배웠다. 그 종이의 글자 모양과 번진 잉크, 그리고 은유법이라는 단어밖에 기억이 안 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때도 수업에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오롯이 글씨를 어른스럽게 쓰는 단짝 친구가 펜을 쥐는 손 모양에 있었다. 엄쥐로 손을 감싸듯이 샤프를 쥐고 작게 날리는 듯이 글씨를 썼는데 따라하다 망해서 선생님께 불려 간 적이 있다. 성의 없게 썼다고. 아닌데.. 엄청나게 노력해서 쓴 것이었는데.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부끄럽다. 그 선생님이 담임인 동안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엄청나게 세뇌를 당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중학교 때는 일기는 멀리하고 유행에 따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편지를 나눠 쓰던 노트가 있는데 보고 있으면 정말 유치하다. 14살이었던 것 같은데 친구는 장난으로 나를 동근아 라고 불렀고 나는 호석아 라고 불렀다. 동근이는 당시 논스톱의 양동근이었던 것 같고, 호석은 클릭비의 유호석이었다. 그 호석와이프를 꿈꾸던 친구도 글씨를 예쁘게 썼었다. 수업시간이 되면 그 친구는 잠을 자고 나는 낙서를 했다. 그렇지만 친구는 자다가도 번호가 호명되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영어책을 유창히 해석했으며 늘 쪽지시험 만점을 받았고 나는 늘 망했다. 나와 다른 생명체 같다고 생각한 친구는 지금 선생님이 되었고 지금도 나와 다르게 살고 있지만 그 시절 썼던 아재개그 가득한 편지를 보면 생각보다 나와 다르지 않구나 싶어 기분이 묘해진다. 아무튼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쪽지쓰기 펜팔노트쓰기로 보내고 고등학교 때가 되어 본격 아무말쓰기가 시작된 것 같다. 고등학교 절친도 글씨를 예쁘게 썼었다. 그 아이와 나는 늘 낙서노트를 들고 다녔고 노래 가사를 적곤 했다. 그 아이가 쓰면 그 시절 유행했던 감성축전 같았고, 내가 쓰면 지저분한 낙서였다.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지만 그땐 그 낙서놀이가 내 삶을 트여주는 유일한 숨통이었다. 



고등학교 때 시작된 아무말쓰기는 스프링노트, 미니 플래너 등 가리지 않았고, 그 싸구려 노트들은 그때 겪은 내 괴로움들을 온전히 받아내 주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노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썼지만 그것을 보고 내가 괴로웠고, 그 괴로움들을 나중에 다시 보게 될 것이 무서워 쓰고 찢기를 반복했다. 찢은 종이를 누군가 볼까 봐 아주 잘게 찢어 집에서 멀리멀리 돌아가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보지 못할 곳의 쓰레기통에 버리기고 오기도 했다. 차라리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걱정이나 돌봄을 받아도 되는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의 나는 그저 저절로 죽어지기를 바라는 내성적이고 어두운 사춘기에 불과했다. 그때 쓴 일기들을 찢으며 울었던 장면은 마치 꿈처럼 생생한데 사실 그때 뭐라고 적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남아있는 건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는 느낌과 습했던 감정 같은 것들 뿐이다. 그때 생긴 일기를 찢는 버릇은 결국 습관처럼 되어서 일기를 노트가 아닌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쓰게 된 순간에도 쓰고 지우길 반복하게 되었다. 나는 블로그 초창기 세대인데 만약 지금까지 지우지 않고 아무말을 쭈욱 써왔다면 꽤 큰 아무말러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는 아무말을 쓰고도 지우지 않기 위해 블로그를 엎고 새로 쓰기 시작하며 나름 신경을 쓰기도 했고, 책 영화 음악에 대한 나름의 감상도 적기 시작했었는데, 어느 정도 쌓였을 때 면접을 보고 들어간 회사에서 나보다 어린 사수가 입사지원서의 내 메일로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 내 일기와 글들을 모조리 읽고 내가 출근했을 때 온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다독가이며 글을 잘 쓰고 감성문학소녀라고 비웃음 가득한 소문을 내고 다녀서 소름이 끼쳐서 그 블로그를 닫아버렸다. 나는 단지 아무말을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사쟁이기 좋아하는 호갱일 뿐인데.   







그렇게 또 아무말들을 여기저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최근부터 본격적으로 손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며칠 안 되었지만 쓰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사실 이 생각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의도치 않은 아무말이 아주 길었다. 

손으로 적는 일기는 불행을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아무렇지 않음을 내 디폴드 값으로 설정하고 하루를 보내지만 일기장을 펴고 펜을 잡는 순간 괴로운 것들이 참았다는 듯이 튀어나온다. 갖가지 자괴감이나 우울함, 묵혀 찌든 감정들이 그 짧은 한 바닥에 빼곡히도 적힌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앞으로 넘겨 읽어보면 역시나 온갖 괴로움들이 넘실거린다. 다행히 지금은 예전처럼 내가 쓴 내 괴로움을 마주하는 것이 그리 무섭지 않다. 오래전 그 17살의 학생은 나이 듦이 주는 단단함을 조금 가지게 된 것 같다. 처음엔 그때와 다를 게 없는 지금에 자괴감이 제곱이 되었지만, 괴로움을 차곡차곡 쌓아보니 그것이 주는 다른 것도 조금씩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괴로움에 파묻혀 놓치고 있는 것,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내가 마음을 쓰는 대상,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필요치 않으나 잊고 싶지 않은 것, 생각보다 중요치 않은 것, 이제 그만 놔버려도 되는 것들 등. 이것이야 말로 아무말러가 된 이후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초6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1년이 넘게 세뇌시켜주신 6학년 우애반 손일수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일기장 한 권이 빼곡히 괴로움으로 채워지더라도 올해는 끝까지 찢지 않고 써볼 생각이다. 먼지 쌓인 아무말의 무게가 나에게 주는 작지 않은 힘을 느꼈기 때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