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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Nov 15. 2019

큰일 났다. 며느리가 되었다.  3

세상 전화기를 다 부수고 싶다 





 2주에 걸친 결혼식과 빡센 신혼여행 대장정과 양가 인사와 이삿짐 옮기기의 시간이 끝났다. 신혼집에서 본가까지는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인데 짐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아직도 이사를 완벽하게 끝내지 못했다. 워낙 먼 거리라 나머지 이삿짐은 잠시 보류하고 쉬고 싶었다. 이동시간이 너무 길고, 너무 많이 걷고, 수면이 부족했던 여행이 여독을 너무 많이 남긴 것이다. 나는 신혼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말했다. 한 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진심이었다. 정말이지 쉬는 것도 안 하고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신혼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첫날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는 도시에서,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직장동료도 없는 정말 나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두려움은 없었고 작은 즐거움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싶었다. 남편은 목요일에 출장지로 떠나기 때문에 평일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첫 주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콩달콩의 시간을 보내기엔 피로가 너무 많이 쌓여있었다. 나는 쉬기 시작하면서 그간의 피로가 폭풍처럼 몰려와 몸살이 슬금슬금 진행되었다. 이삿짐과 여행 짐들로 엉망이 된 집에서 나는 손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저것들이야 한 달 뒤에 해도 상관없지 싶었다. 영혼이라도 탈출시켜 온몸의 찌르는 듯한 통증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모께 전화가 왔다. 시댁에서 어제 왔는데 오늘 바로 무슨 일일까 생각하며 긴장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시부모님과의 통화는 늘 정적과 어색함이 이어져서 받기 전부터, 걸기 전부터 심장이 떨린다. 다행스럽게도 월요일의 전화에서는 처음으로 시모께서 대화를 이끌어갔다. 전날 싸주신 음식들을 먹었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보관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말씀하셨고 내향적인 내 속 저 끝까지 있는 1g의 밝음까지 쥐어짜 내어 밝고 맑게 감사히 잘 먹겠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들을 하고 끊었고 나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화요일이 되었다. 어제보다 몸이 더 아팠다.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 다리와 발목이 아렸다. 몸살 기운이 올라와 종일 잠만 잤다. 자는데 어제에 이어 시모께 전화가 왔다. 나는 잠결에 전화를 봤고 식은땀과 사투를 벌이고 있어서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대신 나중에 정신이 좀 들면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남편에게 톡이 와서 톡으로도 전했다. 그날 밤이 다 되어서야 나는 정신이 들었고 남편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내가 아파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몸살이 심하게 났다고 말씀드렸다고 해서 나는 그날 밤에 연락을 드리지 않고 몸이 좀 나아지면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사실 그게 화근이 될지 몰랐다. 딸이 없는데 딸이 생겨서 좋다고 불과 이틀 전에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프다고 말씀드렸으니 배려해주실 거라 생각했다. 나를 후려 잡고 살았던 우리 엄마도 이해를 해줬기 때문이다.




 수요일이 되었다. 여전히 아팠고, 집 정리는 손도 대지 못하고 뻗은 상태로 눈만 껌뻑이며 하루를 보냈다. 어제 못 받은 전화가 마음에 걸리고 불안했지만 온몸의 기운을 끌어올려 해맑게 전화할 기력이 없었다. 할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안부전화를 하면 두 분 다 "어 그래"만 하시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냥 쉬기로 했다. 삼 일 전에 보고 이틀 전에도 통화했는데 어제 하루 전화를 못 받은 것이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 게 괴로웠다. 




 목요일이 되었다. 몸살이 몸살감기처럼 퍼졌다. 편도가 부으면서 귀도 멍해졌다. 두통도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여전히 뻗어있다가 5시가 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이제 혼자 지내야 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먹을 것도 사고 약도 사 오려고 했다. 밖은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큰 도로 옆을 지도를 보고 걸었다.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시모께서 전화를 안 한다고 뭐라고 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아내가 아프니까 좀 괜찮아지면 할 거라고 알아서 말해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새끼 캥거루였던 것이다. 엄마한테 전화해줘 라는 말에 귀에서 나던 이명 마저 갑자기 안 들리게 멍해졌다. 나는 약을 사러 가던 그 모르는 도로에서 시모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아프다며 괜찮냐고 하셨고, 나는 아직 아프지만 조금만 더 쉬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했다. 시모는 그간과 다르게 엄청 높고 신나는 목소리로 "그래 너네가 얼마나 여행을 오래갔니~ 몸이 아플 만도 하지~"하며 이해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나는 좀 무서웠던 것 같다. 말투가 너무 신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씀을 그렇게 해주셔서 그대로 좋게 받아들여야지 생각하며 좋게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시모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 바꿔줄게~라고 하시며 전화를 바꾸셨다. 너무 순식간이었다. 늘 각자에게 전화를 따로 하길 바라셨는데 그날따라 전화를 바꾸는 것도 좀 이상했다. 그런데 역시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는 적이 없었다. 




 전화를 받은 시부께서도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말이 빠르고 높으셨다. 늘 어~ 어~ 그래~가 끝이라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곤욕스러웠는데 그날은 다르셨다. 첫마디는 이거였다. "아이고 오랜만이네~" 주말에 보고 며칠 지났다고 오랜만이라는 건지 첫마디부터가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했지만 아닌 척 대답했다. 그리고 아주 보편적인 안부인사인 "식사하셨어요?"라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시간은 6시 정도였다. 저녁시간으론 빠르다면 빠른 시간일 수도 있었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안부를 여쭌 것이다. 돌아온 대답은 나를 또 놀라게 했다. 어 그래~ 또는 이제 먹어야지~를 상상했는데 지금 밥 먹을 시간도 아닌데 무슨 식사 얘기냐는 짜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말이 식사 안부밖에 없었는데 내 유일한 아이디어가 와장창 뽀사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머리가 백지화되어서 할 말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시부는 처음으로 혼자 먼저 말씀을 하셨다. 전화 자주 하란 말씀이었다. 시모한테. 몇 번을 말씀하시다가 내가 도로에 있어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잠깐 못 들어서 다른 말씀도 하신 줄 알고 "네?"라고 했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시어머니한테 전화 자주 하라고!!"라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평생 본 적이 없는 엄청나게 크고 시끄러운 차도 옆 인도를 걸으면서 한동안 멍을 때렸다. 내가 왜 결혼생활 4일 차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서러웠다. 며느리는 아픈 것보다 전화가 우선이구나 싶어 결혼이 지랄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행복하단 생각도 못해봤는데 지랄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 시댁에 있었고, 월요일에 통화했고, 목요일에 전화를 드린 건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오랜만이고 죽을죄를 진 걸까. 나는 모르는 그 길에서 흐르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자꾸 걸었다. 이런 결혼생활이라면 지금 당장 깨도 좋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싸구려 와인과 책 두 권을 사 왔다.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다. 나를 평생 잡아먹으려고 했던 내 부모는 사위에게 그렇게 지극정성이고 친절한데, 왜 남편의 부모는 그렇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 화가 났다. 내 부모는 사위가 어색할까 봐 용건만 빠르게 말하고 전화를 끊는데, 왜 저쪽 부모는 용건도 없는데 자꾸 전화를 요구하고, 전화를 하면 말도 안 하면서 뭐 어쩌라는 건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혼인신고도 전에 이혼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참고 맞추며 살 자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 우리는 결혼 훨씬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캥거루 부모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내가 예상했다는 얘기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내가 혼자 길에서 엉엉 울 정도로, 어릴 적 학대당할 때처럼 다시 불면증과 불안감이 나를 잠식시킬 만큼 이 상황이 나를 괴롭히고 망가뜨릴 거란 건 상상은 하지 못했다는 것. 




 우리는 결혼 전과 결혼 후,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전화로 나를 들들 볶기 전에 양가 안부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 캥거루는 거의 매일 부모님과 전화를 하지만 나는 혼자 살 때도 아빠와는 일절 안 했고, 엄마와는 1~2주에 한 번 정도 통화를 했다. 아들 캥거루는 데이트를 하는 중에도 매번 엄마한테 전화가 왔지만 나는 전화가 온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부모님과 얼마나 자주 통화하냐고 물어봤을 때 새끼 캥거루는 1~2주에 한 번이라고 했는데 무슨 그런 지구가 네모나다는 구라를 치는지 웃음도 안 나왔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얘기를 꺼냈었다. 결혼 후 당신의 엄마는 나한테 당신만큼 전화를 자주 하라고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전화가 어렵고, 할 말도 없고, 내성적이다. 그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내 성격이다. 내가 외향적이고 애교가 많아서 전화를 자주 하고 수다 떨고 막 그러면 나도 좋겠지만 나는 그게 힘들다. 라고 얘기를 했었다. 그때 예비신랑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자주 연락하거나 하라고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니긴 무슨. 결혼 첫 주부터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예비신랑에서 진짜 신랑이 되고 나서 신혼여행 중에도 이 얘기를 했다. 그때도 남편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했다. 눈치가 없는 걸까,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우리는 이미 양가에 안부전화는 월 1~2회 정도로 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 횟수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새끼 캥거루가 그 정도면 적당하다 라고 해서 정해진 것이다. 주 1~2회도 아이고 오랜만이네~라고 전화를 받는 캥거루네 부모님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참 잠도 잊고 괴로워하던 나는, 내 성격 안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다정하고 살가운 며느리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되지도 않는 계획과 다짐들을 다 없애버렸다. 나는 캥거루 가족에게 팔려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만 꼭 캥거루 가족 틀에 맞추며 살 필요는 없다. 아들과 아들의 배우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쪽에서도 알아가고 적응해야 한다. 물론 나도 적응을 해야겠지만. 그래서 나는 내 생활을 지키기 위해,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나와 결혼한 사람과의 약속대로 2주 간격으로 안부전화를 함께 드리기로 했다. 스피커폰으로. 그래서 그 캥거루 부모의 준비한 멘트 폭격에 당한 목요일 이후 나는 2주간 전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아들 캥거루와 함께 얘기한 후였다. 




하지만 14일이 채 되기 이틀 전 시모에게 전화가 왔다. 

또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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