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현실적인 딸 같은 며느리가 되자
정말로 현실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보자
전화기가 울렸다. 시모의 전화였다.
12일 전 두 분의 작정한 전화 강요 폭격 후 나는 스트레스와 불안감 우울증 등이 폭발해 밤에 잠을 못 자서 밤낮이 엉망진창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 수도 있지만 나는 타고난 예민한 인간인 탓인지 그 후 몇 번이나 베란다 난간을 쳐다봤다. 핸드폰을 부수고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결혼을 무르고 싶었지만 돌아갈 곳도 없고, 벗어나고 싶고 멈추고 싶지만 이 스트레스를 당장 해결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일어나면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두기 시작했다. 한두 개 사기 시작했던 초록색 반려식물이 6개가 되었다. 내가 있고 싶은 집, 나의 생활의 틀을 안정적으로 만들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이사 때문에 일을 쉬었고, 아직 작업방이 정리되지 않아 일을 멈추고 있었는데 그래서 불안감과 함께 우울감이 배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빨리 바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같은 말의 시작이었다.
"네가 하도~~ 전화를 안 해서"
"죽어라~~~~ 전화를 안 해서"
이런 말들이 쩌렁쩌렁 울리며 귓속을 파고들었다. 2주 간격도 싫었는데 2주가 되기 전에 또 시작되니까 그 2주의 전략마저 금이 가기 시작했다. 2주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저 정도의 집착이면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깨버려야 평생이 편해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싶어 지는 게 사람의 단순한 본능인 것처럼, 삐딱한 나는 못한다 못한다 하면 그냥 못하는 사람으로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진다. 굳이 잔소리 폭격에 나를 맞춰가며 스트레스를 밥처럼 먹으며 살기엔 나는 너무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아왔다. 결혼은 배우자가 먼저 이제는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손을 내밀어서 하게 된 것이고,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나에겐 '나의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6년 가까운 연애기간 동안 그에게 늘 말하고 또 말했다. 그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내 삶의 목적이자 방향이기 때문에 그걸 방해하는 게 시월드라면 그게 얼마나 하찮아 보이는 이유이든 나는 콕 찝어 원인을 밝히고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끝낼 용의가 있다.
전화기에서 여전히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목소리를 혼이 나간 모습으로 듣고 있었다. 네가 전화를 해야 반찬도 챙겨주고, 반찬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어쩌고 하는 말이 이어졌다. 평일엔 혼자 살고, 결혼생활이 한 달도 안 되었기 때문에 내가 코끼리처럼 먹지 않는 한 의미 없는 말이었다. 나는 그냥 아직 반찬이 많다고, 먹을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서 아직 오래 먹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것도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었다. 밥을 잘 챙겨 먹고 하라고 하는 말씀도 이젠 욕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냉장고에 싸주신 밑반찬 통을 보는 것도 부담스러운 지경이 되었다. 다시 전화요구 얘기로 말씀이 이어졌다. "전화를 해야 아빠한테 예쁨 받지. 아빠가 며느리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예뻐하는 사람에게는 12일 전처럼 말할 수 없다. 그날의 말투는 호구로 들인 애가 복종을 안 하니 열 받은 사람이 작정하고 내뱉는 말투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간의 일들의 종합적인 결과로 인해 캥거루가족 누구에게도 예쁨 받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당신의 며느리는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말을 잘 듣는 멍청하고 착한 애가 아니라는 걸 얼른 눈치채시길 바랄 뿐이다. 사실 힌트는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가 충분히 드렸지만 그게 시부모님께 예고편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상견례 때의 이야기는 다음에 쓰도록 하겠다.)
속사포처럼 달리는 전화 강요 랩핑에서 "왜? 전화가 어려워?"라는 문장이 귀에 탁 꽂혔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나는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아직은 결혼생활 한 달도 안 되어서 늘 안 쓰는 근육까지 끌어올려 해맑게 웃는 표정을 짓고 최대한 밝은 말투로 말을 했으나 이젠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나를 꾸며내 봐야 언제까지 꾸며낸 채로 살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전화 건너편에서 쏟아내는 속사포랩핑을 자르고 입을 열었다.
"네. 저는 전화가 힘들어요. 원래 전화를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어색하고, 무슨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가족들이랑도 평소에 통화 거의 안 해요. 그래서 계속 전화하라고 하시는 게 좀 불편해요."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이런 말을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 극단적인 성격을 누르고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내가 했던 얘기를 기억은 하실까 싶지만.
이날의 전화통화에 약간은 당황하셨을까? 상상만 할 뿐 그날에 관해 돌아온 얘기는 없다. 그 후 남편이 혼자 시댁에 하루 다녀왔지만 돌아와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무슨 말씀을 하셨을 텐데 아무 말씀 안 하셨다고 하는 게 표정부터 1000% 거짓말 같았지만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위의 전화로부터 11일이 흘렀다.
14일 차에 연락을 드려야지 했지만 남편과 같이 있을 때 하고 싶어서 내일 연락을 드리려고 한다. 어떤 말씀을 하실지 이제는 무섭기보다 기대가 된다. 잘 보여야지, 잘해야지 하는 강박에서 벗어났더니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펴지는 기분이다.
그 사이에 부모님은 또 시댁에 몸에 좋은 농산물이라며 몇 박스를 보내셨다. 그만 좀 챙기셨으면 좋겠고,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애써서 잘 보이려고도 잘하려고도 말라고 가족들을 모아놓고 광광 울며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시댁에선 우리 부모님께 택배로 무엇을 받으신 것에 대해 나한테도 남편한테도 알려주시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엄마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 그 전화 좋아하시는 분들이 그런 건 또 조용하시다니 참 우습다. 엄마는 사돈한테 그거 받으셨다고 따로 뭐 보내실 필요 없다고 전하라고 구구절절 나한테 말씀하셨지만 나는 보내든 말든 내버려 두겠다고 했다. 이때까지 많이 받으셨는데 뭐 하나 답례로 보내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엄마의 사돈이 답례로 뭘 보내시면 다음번에 또 좋은 거 있으면 보내드리기 부담스럽다고 하는 말에 정말 단전부터 짜증이 치솟았다.
아들 가진 부모의 며느리와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딸 가진 부모의 사위와 딸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서 화가 난다. 시부모는 며느리가 잘하길 바라고, 친정 부모도 딸이 잘하길 바란다. 시부모는 며느리를 미워할 준비가 처음부터 되어있고, 친정부모는 딸이 미움받을까 걱정한다. 나는 이 모든 게 너무 보편적인 상황이라는 게 정말 지랄 같아서 속이 쓰렸다. 나의 감정은 그라데이션처럼 점점 분노가 차오르고 있고, 내가 되려고 했던 밝고 상냥한 며느리의 모습은 이제 나한테 없다. 앞으로는 그냥 솔직하고 직설적인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리려고 한다. 다른 글에서 말했듯 폭력적인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 가시를 세우고 긴장하며 살았던 어린 나처럼, 결혼생활도 덮어두고 당하지만은 않으려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남편과 결혼을 하면 나를 찌르고 남에게도 벽을 치던 내 속의 그 가시들을 모조리 녹여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편이 캥거루 새끼인 걸 알면서도 그런 착각을 했던 건 온전히 내 실수였다.
나는 결국 고슴도치 딸에서 고슴도치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더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내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뾰족한 가시를 만들어낸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더 강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내 부모처럼, 과거의 내 엄마처럼, 많이 울고 괴로워했던 기혼인 내 친구들처럼 무조건 시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 시간만큼 괴롭겠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몸도 마음도 단단하게 근육을 키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