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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Nov 18. 2019

고슴도치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2

소스라쳤던 상견례, 엄마의 선빵 



 고슴도치 며느리가 되어야 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그때, 결혼식 거의 10개월 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보려고 한다. 




 1월의 어느 날 어느 한정식 집에서 양가 부모님과 우리, 총 6명이 마주 보고 앉았다. 우리는 5년을 꽉 채워 만났었지만 서로의 부모님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 위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남편 부모님은 충청도, 전라도 분이시지만 서울에 사시고, 우리 부모님은 경상도 토박이시라 말투의 온도부터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어색하게 상견례가 진행되었고, 진행자는 아빠였다. 격식과 예의를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상도의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남이기 때문에 아주 족보까지 읊을 것 같았다. 아빠가 어색함을 뚫고 구구절절 집안에 대한 소개를 했으나 돌아오는 반대쪽의 말은 "저는 차남이라 그런 거 잘 몰라요."였다. 정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나오는 음식만 자꾸 입에 집어넣었다. 끊길 듯 말 듯 어른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대화는 점점 재미있게 흘러갔다. 신랑 측 어머님은 내 새끼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애는 착해서 속 썩일 일은 하나도 없을 거라며, 세상 착하다며 반복하셨고, 더 많이 해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쥐뿔 안 해주는 우리 집이 뻘쭘한 순간이었다. 엄마 캥거루의 곧 마흔인 아들을 우쭈쭈하는 건 이날부터 엄청났다. 남동생을 대할 때의 우리 엄마 같았다. 내 칭찬도 아닌데 내가 오글거리고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반란이 시작됐다. 

"우리 아들은 너무~ 착해, 착해서 속 썩 일일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진짜 내 아들이지만 너무 착해!"

"우리 딸은 못돼서 딱이네요. 둘 다 성격이 무르면 안 되죠!"

순간 내가 뭘 들은 건지 머릿속이 띠용 거렸다. 바로 이어지는 대화도 웃겼다. 엄마 캥거루는 사돈의 말이 1도 귀에 안 들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아들 칭찬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은 너무 착해요~ 내 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착해."

"그러게요. 집에 몇 번 왔었는데 참 성품이 좋더라고요. 우리 딸은 고집도 세고 드센데 둘이 천생연분이네요." 


'...?'


 정말 내가 뭘 듣고 있는 건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대놓고 디스하는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드라마라고 생각했을 때 신랑 쪽 부모님이라도 "에이 아니에요~"라고 해줄 만도 하고, 아빠가 나서서 "우리 애도 착해요~"라고 할 만도 한데 엄마의 얘기에 아무도 반론하지 않았다. 나만 띠용 하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을 뿐, 남편은 열심히 먹느라 아예 듣지도 못한 것 같았다. 






 상견례가 끝나고 우리는 따로 카페에 쉬러 갔다. 영혼이 털린 것 같아서 어딘가에 콕 박혀서 한숨 돌리고 싶었다. 카페에서 아까 어머님들의 그 대화를 얘기했다. 역시나 남편은 그런 말을 하셨냐며 못 들었다고 했다. 그래 며칠 굶은 것처럼 열심히 먹더라니. 그런데 웃긴 건 본인 어머니가 본인 칭찬을 마르고 닳도록 한 건 기억하고 있었다.

 "아까 들었지? 나 착하다고 한 거?" 

 장난이었겠지만 민망함은 다 내 몫이었다. 워낙 경상도 가부장적인 아들 편애 가정에서 무뚝뚝한 장녀로 자라서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누가 자기 자랑을 철판 깔고 하거나, 본인 가족 자랑을 하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 자랑이 트렌드인 세상에서 외딴섬에 있는 기분이다. 


 나는 한동안 누군가를 만나면 상견례 썰을 풀어야 했고, 역시 엄마의 딸 디스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들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의외의 말을 했다. 


"어머님이 선빵 날리셨네!"

"너네 엄마가 이겼네!"


 나중에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딱히 무슨 의도가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는 다 엄마가 기선제압을 한 거라며 똑같이 자기 새끼 끼고돌면서 칭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내 딸은 드세니까 함부로 막대하면 안 된다는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엄마의 별로 생각 없이 한 말에 포장이 대박이었지만 그런 얘기들을 기혼자들에게서 듣다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땐 비록 내가 고슴도치 며느리가 될 거란 상상을 전혀 못할 때였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날 엄마가 시댁에 경고한 예고편이 지금 내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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