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대화를 해볼까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소속감을 원한다. 혼자가 좋고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미혼인 친구도 놀 사람이 없어 외롭다며 동호회를 가입하고, 소모임을 나가면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람을 만나고, 사소한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조직생활은 싫다며 방구석에서 혼자 돈도 안 되는 일을 한지 꽤 오래된 나도 어떤 자그마한 취미 모임에라도 소속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족도 친구도 다 나를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며 인간 세계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놔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도 그새 대부분의 기억을 각색해버렸는지 때때로 커피 한 잔을 두고 시답잖은 얘기를 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사람들이 모이는 그룹을 보면 크게는 학생과 직장인 또는 프리랜서, 육아맘과 미혼, 청년과 중년 등으로 분류되곤 하는데 그 안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 티브이도 책도 공허함을 다 채워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고, 집에서 일을 하지만 프리랜서라기보단 자영업자에 가깝고, 자영업자라고 하기엔 사업장이 없으니 프리랜서 같기도 한 애매한 반백수고, 전업주부도 아니고, 아이가 없으니 맘도 아니며, 나이가 확 많지도 확 젊지도 않아서 취미 모임의 모집공고에 나이 커트라인에 간당간당하게 걸리는 30대의 기혼 사람이다. 결혼을 하고 전혀 알지 못했던 도시로 이사를 와서 정착 중이라 근처에 친구도 가족도 배우자도 없고, 일주일에 5일은 누구와도 접촉이 없는 오롯이 혼자만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동네를 걷다가 반려견이라도 있었으면 동네 산책이라도 시키며 견주분들과 눈인사라도 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나이라도 몇 살 어렸으면 독서모임이나 운동모임에라도 가입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독서모임과 운동 모임에 왜 나이 제한과 기혼자 제한이 있는 건지 너무 의도가 빤해서 우습다. 다른 지역에서 소모임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직장인 친구는 그런 모임에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자랑을 한다. 하지만 뒤에 딸려오는 말은 대부분이 자기보다 많이 어리다는 말. 그리고 친구가 속한 모임도 기혼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심심한 것과는 다른 공허함에 다른 친구와의 전화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전혀 없다고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그렇겠네. 맘 카페를 가입할 수도 없고. 애가 있으면 엄마들이랑 친해졌을 텐데." 이런 말 뿐이었다. 이 말을 들으니 이제 내 나이 대의 분류는 결혼의 유무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유무로도 나뉘겠구나 싶었다. 뭔가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내가 속할 분류는 없다. 결혼을 하면 고양이를 키우자며 꼬시던 배우자는 돈이 어쩌고 책임감이 어쩌고 하면서 나 몰라라 하고 있고, 나는 말 없는 식물들만 하나씩 늘리고 있다. 가벼운 대화는 그리우면서 티브이 속 말은 왜 시끄럽기만 한지 오늘도 오디오 채널에 가사 없는 음악만 틀어놓고 이런저런 혼잣말을 키보드로 늘어놓는다. 결혼을 하고 달팽이를 키우다 몇 백 마리가 되었다는 친구를 내 결혼식 전 오랜만에 만났더니, 지금은 다육 화분이 60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땐 사진만 보고 깜짝 놀랐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식상해진 단어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무해한 '힐링'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