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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Mar 06. 2017

밉게 날 기억해

003. 기억해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영화의 한 대사, 책의 한 문장,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입에 붙을 때가 있다. 한 문장에 꽂힐 때면 한동안 계속 그 문장만 중얼거리게 되는데, 요즘 계속 중얼거리게 되는 문장은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줄래요."라는 가사다. 그 가사에 왜 꽂혔는지 왜 계속 그 가사만 맴도는지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간순간 그 가사를 흥얼거리게 될 때면 여러가지 기억과 감정이 섞이는 느낌을 받곤 한다.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줄래요.



나는 누군가 날 밉게 기억할 자유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선택하거나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게 아니지만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했다. 어떤 책의 제목처럼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던 거다. 나는 가사처럼 밉게 날 기억하지 말아달라는 생각보다 아예 나를 잊어주길 바랐다. 미니홈피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내가 남긴 내 흔적들을 지웠고, 이유 없이 번호를 바꾸기도 했고, 아무도 찾지 않을 수도 있는데 굳이 혼자만의 공간에 숨어버리는 의미 없는 잠수를 종종 시도했다. 그건 자존감 없던 내가,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나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유일하고 바보 같은 방법이었다. 사실 타인 누구에게도 나는 생각보다 그리 큰 의미가 되지 않았고, 나를 그리 자주 떠올리지 않으며, 자주 나에 대해 떠든다고 해도 개의치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땐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작은 상처도 크게 덧날 정도로 사람에 대한 면역력이 약할 때에는 작은 미움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상처를 넓고 깊게 파내게 된다. 그 시간을 아주 길게 거쳐 깊히 박힌 상처를 스스로 도려내 마치 득도한 사람 마냥 시니컬해지기 전까지는 계속 그 과정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나를 지워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스스로 그 사람들은 잊는 아주 단순한 것인데, 마음 약하고 어리석었던 그 시절엔 모든 것에 의미를 두고 나를 괴롭히기 바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이것 저것 찾아서 스스로 상처를 만들지는 않는다.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줄래요.'라는 가사는 이별노래의 가사지만 나는 약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강하게 들렸다. 밉게 기억하지 말라는 말이 나를 잊어달라는 말은 아닌 것 같아서. 오히려 나를 기억해달라는 말 같아서. 그 슬픈 가사에서 솔직하고 당당한 마음이 먼저 느껴진 건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일 수 있겠지만, 멍하게 있다 그 가사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때면 가사와 다른 이유로 슬퍼진다. 나를 밉게 기억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 아얘 나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잊어줬으면 했던 어렸던 날들의 마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Qpfil0IYA

AKMU - '오랜 날 오랜 밤 (LAST GOODBYE)'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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