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렬한 색의 아이폰
애플이 처음으로 아이폰의 사이클 중간에 새로운 색상을 투입했다. (아이폰 4의 화이트는 연기된 거니까 논외로) 이미 경쟁사들은 자주 하는 전략이다. 출시 초기의 수요 이후 떨어지는 판매량을 보완하기 위한 전략.
물론 애플도 이런 생각으로 아이폰 7의 프로덕트 레드를 투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과 빨간색은 생각보다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일단 이 글의 제목이나 위 문단에서 그냥 아이폰 7 레드라 하지 않고, ‘프로덕트’ 레드라고 쓴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프로덕트 레드는 2006년에 시작한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 사업 프로젝트다. 이걸 시작한 사람은 바로 영국의 밴드 U2의 보노와 빈곤 구제를 위한 비영리 단체인 ONE 캠페인의 바비 슈라이버. (이후 프로덕트 레드는 2012년 ONE 캠페인 산하로 들어간다) 프로덕트 레드 라이센싱을 받은 빨간색 제품은 수익 중 일부(최대 50%)가 에이즈 퇴치를 위해 조성된 글로벌 펀드에 기부된다. 2006년에 조성된 이후 프로덕트 레드는 코카콜라, 뱅크 오브 아메리카, 나이키, 스타벅스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10년 남짓의 기간 동안 4억 6,500만 달러(약 5,195억 원)의 기금을 모았다.
애플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와 친분이 두터웠던 보노는 잡스에게 애플이 프로덕트 레드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꼬드겼고(?), 잡스는 이에 응해 2006년 10월에 2세대 아이팟 나노에 프로덕트 레드를 처음으로 추가했다. 그 뒤로 애플은 아이팟이나 아이폰 케이스, 아이패드 케이스와 스마트 커버, 그리고 비츠 헤드폰과 스피커 등 프로덕트 레드 제품을 꾸준히 출시해왔고, 세계 에이즈의 날에는 개발자들과 함께 다양한 앱에서 프로덕트 레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약 1억 달러(약 1,117억 원)의 기금을 모았다. 혼자서 1/5 이상의 기금을 모은 것이다.
프로덕트 레드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디에디트의 에디터H님이 쓰신 기사나 중앙일보의 오원석 기자님이 쓰신 기사가 있으니 더 궁금하다면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도록 하고, 이제 우리는 아이폰 7의 프로덕트 레드 에디션에만 집중해보도록 하자.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야?’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프로덕트 레드를 열심히 밀고 있는 애플 입장에서 왜 이제야 아이폰 본체에 프로덕트 레드를 추가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솔직히 당분간 알기는 힘들 거 같으니 그냥 아이폰에만 집중해보자.
음. 빨갛다. 정말로 빨갛다. 조명에 직접 비춰보면 눈이 시릴 정도로 빨갛다. 프레스 사진으로 봤을 때도 색깔이 잘 뽑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보니 이건 또 다르다. 사실상 아이팟 터치의 프로덕트 레드와 거의 비슷하긴 한데, 약간 더 진하고 어두운 톤이다. 물론 조명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애플 로고는 실버나 골드, 로즈 골드 아이폰과 비슷하게 완전히 폴리시 된 스테인리스 스틸이어서 하얀 광원에 비추면 반짝반짝 빛난다.
그냥 다른 색의 아이폰에다 프로덕트 레드 케이스를 박아버리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었는데, 마침 내 아이폰 7 플러스에 실리콘 프로덕트 레드 케이스를 박아서 쓰고 있어서 비교를 해봤다. 전체적인 색 자체는 비슷하긴 하지만, 역시 금속 재질에서 오는 색다른 느낌이 있다. 이 아이폰은 정말 소위 ‘쌩폰’으로 들고 다녀야 그 진가가 나올 거 같다.
하지만 아이폰 7이 나오고 나서 6개월, 프로덕트 레드 캠페인이 시작한 지 10주년을 맞은 작년 세계 에이즈의 날(12월 1일)에서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나온 것 치고는 몇 가지 눈에 거슬리는 점이 보이긴 한다. 일단, 전면 커버 글라스를 하얀색으로 채웠다. 애플이 예전부터 색이 있는 아이폰은 늘 커버 글라스를 하얀색으로 했었고, 거의 비슷한 5/6세대 아이팟 터치 프로덕트 레드도 전면 커버 글라스가 하얀색이기 때문에 사실 놀랄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검은색이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늘 남는다. 트위터에 검은색 커버 글라스를 넣은 프로덕트 레드 아이폰의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전례도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바로 터치 ID 버튼의 링이다. 골드나 로즈 골드 아이폰은 맞는 색의 버튼 링을 배치하는데, 프로덕트 레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버 모델의 터치 ID 버튼 링을 가져왔다. 빨간색 링의 수율이 안 나온 것일까? 진실은 저 너머다. 라이트닝 포트를 감싸는 개스킷 색이 실버인 것도 약간 아쉽다.
이러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아이폰 7 프로덕트 레드는 지금까지의 아이폰 중 가장 진하고 강렬한 색을 가진 모델이다. 또한 에이즈 퇴치에도 적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의도 있으니, 좀 더 합리화(?)가 되는 지름이 아닐까. 아이폰 7의 프로덕트 레드는 4.7인치 아이폰 7과 5.5인치 아이폰 7 플러스로 구매할 수 있고, 용량은 128/256GB 중 하나로 고를 수 있다. 색을 빼면 기존 아이폰 7이나 아이폰 7 플러스와 사양은 완전히 똑같다. 가격은 아이폰 7이 106만 원, 아이폰 7 플러스가 123만 원부터.
구매할지 말지 결정장애에 걸리신 여러분을 위해 사진을 몇 장 더 찍어왔으니 보면서 결정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