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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슐랭을 읽는 여자 Jun 21. 2020

김영탁 '곰탕'의 곰탕

[소설 속의 요리를 따라 만들자! ] 김영탁의 곰탕 편 

고작 인생의 반도 못 산 화자가 ‘나이듦’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겠다고 하는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지지만, 책 한권과 그 책에 나오는 요리를 가지고 한두자 조심히 나이듦에 다가가 보도록 노력하겠다.      





한 사내가 있었다. 이름은 이우환. 한 곰탕집의 말년 보조 주방장인 그가 옛날 참 곰탕의 비결을 알고 싶어 목숨을 걸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바로 이번 달 화자가 추천하는 소설, <곰탕>의 내용이다.     


왜 곰탕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작가는 많고 많은 음식 중에 곰탕을 가지고 왔을까? 작가가 만들어낸 미래 세계에는 모든 가축이 바이러스로 인해 멸종된 사회다. 과거의 소 맛을 끄집어내 만든 가축 쥐의 고기 맛은 누린내 말곤 큰 설명이 없었다. 곰탕이 아닌 과거의 스테이크의 육즙, 그 풍미를 그리워할 법도 하다. 아니면 시원하게 얼려논 신선한 육회의 쫀득함을, 하지만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곰탕을 고집한다. 미래에 우리가 가장 그리워할 맛, 가장 구현하기 어려울 거라는 그 맛, 그것은 정말 곰탕일까?     



곰탕은 우선 각 집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있다. 대파 뿌리와 후추알을 넣는 집이 있는 반면, 늘보리를 넣어 잡맛을 제거하는 집이 있다. 우리는 시간도 제각기, 핏물을 빼는 시간도 제각기다. 특히 끓이는 시간은 집마다 천차만별인데, 어느정도 통용된 사실은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그 맛이 진해지고, 귀해진다는 것이다.  

    


곰탕이란 누군가의 시간이 많이 할애될수록, 먹는 사람은 단숨에 먹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요리다. 끈적한 기름이 둥둥 떠 있지 않을수록, 입안에 거슬리는 불필요한 건더기가 이 사이에 끼어 국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수록, 우리는 곰탕을 참 맛있게 먹었다 한다. 중간중간 곱게 썰은 양지머리와 아롱사태를 한 두점 숟가락에 올려, 잘익은 깍두기 한 알 올리고 한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어본다.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드는 양지머리, 씹을수록 재미지는 아롱사태의 쫀득한 식감, 그리고 적절히 산미로 밸런스를 채워주는 깍두기의 화려한 서포트까지. 송송 썰어 들어간 대파가 운좋게 한숟갈에 포함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하게 든든하고 완벽한 한입이 있을까. 변치 않은 참 진리는 바로 부모님이 직접 곤 곰탕이 최고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아버지 종인이 아들 순희에게 한 그릇 떠주는 곰탕은 기다림을 상징한다. 곰탕은 애초부터 기다림의 미학이다. 게다가 소설에서 아버지 종인은 곰탕을 만드는 것에도 끝없는 인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반항하는 아들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가 알아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종인은 물을 끓이고 뼈를 넣고, 살을 집어넣고 국을 내고 살을 삶는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많은 주방장들은 물을 올려놓고 국을 끓이는 동안 뭔가를 부지런히 했다. 하지만 종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불 앞에 앉아 있었다.




이 문장을 읽고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나이듦과 어떠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이 곰탕 한 그릇을 끝낸 사람처럼 긴 여운으로 남았다. 혹은 나이가 듦으로써, 기다린다는 것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자신을 돌아봤다. 확실히 30대 초반까지 출발대의 총성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다. 뭐든지 시작을 좋아했고, 기다린다는 것을 지겹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겼다. 기다림에도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하고는 앞으로만 달렸다. 열정 그리고 젊음이 다였던 과거였다. 총성이 들릴 때 마다 나는 허겁지겁 좌우 볼 틈 없이 앞을 향해 달렸고, 그렇게 몰입했기에 원하는 것을 가진 적이 간혹 있었다. 그 손에 쥐어지는 가시적인 무언가 때문에 뛰다가 떨어트린 마음의 불순물을 볼 틈이 없었다.      



요새 나는 번아웃 증후군을 느낀다. 그렇게 미친 듯이 뛰고, 불순물을 만들고, 주변을 살피지 않고, 몰입을 하다보니 단편적인 얻음은 있었지만, 내 안에 뽀얗고 하얀 진국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우연히 ‘나’라는 사람의 엔진이 고장나고, 다음번 총성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찰나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기다림. 우연히 기다림이라는 것을 경험해봤다. 내가 지나온 자리의 불순물을 보게 되었다. 한 템포 쉬면서, 내 호흡을 강불에서 약불로 줄여보았다. 잔잔한 거품들 사이로 내 뽀얀 모습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욕심을 버리고 기다리는 것에 온전히 집중했을 때, 마치 온갖 야채를 넣고 잡내를 없애고자 노력했던 내 모습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또한 내가 나이를 먹으며 스스로 지쳐서 주저 앉지 못했더라면 볼 수 없었던 것 일거라 생각이 드니, 무작정 달려온 내 젊음에게도 감사를 느꼈다. 나이듦이란, 아직은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확실한 건 수백번의 총성과 달림, 몰입, 열정, 그리고 번아웃 끝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맞다.  


    

부모란 자식보다 ‘나이든’ 자다. 그들은 수많은 세월 안에 자식처럼 앞만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과 똑 닮은 불순물을 들고 따라오는 자식을 바라볼 때 그들은 자신의 닳고 닳은 뼈라도 내어주고 싶을 거다. 그들은 때론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 불순물을 대신 치우고자 우리의 레일 앞에 다가온다. 우리는 앞을 가린다고 짜증을 낸다. 그렇게 반복을 하다보면, 부모는 기다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미 알고 있다. 자식이 부모의 레일 선상까지 따라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부모의 뼈 국물에는 불순물이 없다. 이미 우린 시간이 두 배나 길다. 우리는 부모의 뼈 국물을 따라, 우리만의 곰탕을 우린다. 그렇게 나의 곰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부모도, 자식도 자신의 레일 위에서 나이가 들어간다. 기름과 불순물이 하나 없는 사랑과 함께 말이다.           




<곰탕 레시피> 


재료: 사골, 등뼈, 아롱사태, 늘보리1 컵, 대파 (수염포함), 통후추 30알      


1. (사골 + 등뼈 3kg), 양지, 2시간 핏물 뺀 아롱사태를 준비한다. 


2. 찬물에 사골, 등뼈를 넣고 끓인다. (찬물에 시작해야, 뼈에 이물질이 빠진다.)


3. 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찬물에 세척하고 첫 물은 버린다. 


4. 다시 뼈를 넣고, 물을 넣고, 늘보리, 대파, 통후추를 넣고 푹 우리면서 계속 불순물을 제거한다. 시간은 길수록, 정성을 다할수록 좋다. (아롱사태와 양지는 따로 삶고, 기름이 올라오면 걷는다.)





위의 글은 매거진 Chaeg 에 수록된 '인생이라는 곰탕'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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