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이었다. 교육으로 꽉 찬 주말을 보내고 조금 느슨하게 풀어지고 싶은 날이었다. 남편과 시간이 맞아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오빠 나 어디 가고 싶어!"
"원주에 산채비빔밥 먹으러 갈래?"
"..? 그래 좋아 ㅋㅋㅋㅋㅋ"
평소에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면 늦은 시간에라도 대충 챙겨 입고 차에 올라타 가까운 휴게소에서 어묵과 소떡소떡을 먹고 오는 우리. 그날도 남편의 원주 산채비빔밥 제안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은 세차를 하고 그 사이 나는 자주 가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사 왔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원주 산채비빔밥'을 검색해 너무 광고스럽지 않으면서 맛집 포스가 풍기는 밥집 하나를 골랐다. 목적지에 식당 이름을 입력해 넣으니 1시간 20분이 떴다. 조수석 등받이를 넉넉하게 뒤로 젖히면서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편안한 사람과 함께 별다른 목적 없이 밥을 먹으러 평소보다 조금 멀리 떠나는 것, 무척 가볍고 행복한 일이구나.
우리 부부는 드라이브를 할 때 평소보다 훨씬 밀도 있게 대화를 나눈다. 그날은 내가 할 말이 많았나 보다.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번갈아 쫍쫍 마시며 요즘 나의 일과 삶,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종알종알 쉴 새 없이 말했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시원하게 나왔고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로운 감각이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말을 하다 보면 어딘가 깊숙이 깔려 있던 생각들이 드러나고, 떠오른 생각들은 그제야 순서나 인과관계를 따라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오빠에게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게 잘 해내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하고 있었다.
오빠는 한참 동안 이어지는 내 이야기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 들었다. 그러고는 한 마디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강점으로 먹고사는 거지!"
평소 내색은 잘 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걱정 고민을 달고 사는 내게 남편은 항상 가볍고 명쾌한 해답을 준다. 이미 갖고 있는 좋은 점을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남편 덕에 내 자존감도 바닥날 일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한다. 두서없는 생각과 감정을 와르르 쏟아내고 가장 가까운 이의 넉넉한 지지를 받으니 그제야 막혀있던 것들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처음의 목적과 다르게 우렁된장전골(차돌된장을 시켰는데 잘못 나왔다)과 곤드레전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곤드레전은 슴슴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좋았고 집된장을 넣어 오래 끓여야 제맛이 난다던 우렁된장전골은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계획 없이 떠난 식사 여행에서 묵은 생각은 털어내고 든든하게 배를 채워 돌아왔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근사한 월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