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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Sep 14. 2017

토끼와 거북이? 거북이와 토끼!

무목적의 목적 I

생존의 기회가 줄어들수록 예술은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사회를 멈출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그렇게 문득 멈추었을 때 사람이 사는 데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사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은 분명 예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오랜 시간 숙성해서 가장 순수한 마음 자체를 보여 주고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들려 줄 수 있는 것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사람을 살게 해 주었던 바로 그 ‘희망’처럼.


I. 토끼와 거북이? 거북이와 토끼!

“선생님, 음악은 언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세 살, 네 살?”

“아이가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좋아하기 시작할 때요.”

물론 성급한 우리 어른들은 자연적으로 관심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아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음악에 노출시킬 것을 권한다. 일단 음악공부를 시작하고 나면,

“선생님, 저희 아이가 재능이 있나요?”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다. 이 때 그들의 관심은 단연 청음, 초견, 혹은 테크닉이다. 노래를 듣고 그대로 따라한다거나, 악보를 쉽게 읽거나, 힘 안 들이고도 마음먹은 대로 손이 움직여 주는지가 전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이번에도 조금 다르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재능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면 기술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다 해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위로가 아니다. 청음, 초견, 자연스런 테크닉 등은 ‘매우 유용한’ 도구이나 음악에 ‘결정적’ 요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들이 빠른 출발선이라 생각할 수는 있다. 음악을 배우는 것이 빠르고 수월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하자면, 이러한 기술은 연습으로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 오히려 연습으로 다져지지 않은 ‘선천적 유연함’은 실제 무대에서는 위험하다. 아는 사람은 안다. 무대에서의 실수는 만만하던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등은 믿는 도끼에 찍힌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재주 좋은 토끼가 거북이의 인내심을 가졌을 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글렌 굴드나 예프게니 키신처럼 하늘로 올라간 스타가 되어 우리 옆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예비 피아니스트들과 작업하다 보면 재주 좋은 토끼들은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연습 없이 무대에서의 중압감을 이기기는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재주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치면 나태와 오만이 된다.

반면, 겸손한 거북이는 항상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부족분을 연습으로 채운다. 그리고 연습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쇠도끼를 금도끼로 바꾸어 준다. 하나씩 차근차근 연습하다 보면 뭐가 같고 뭐가 다른지 자연히 분석도 하게 되고 덤으로 암보도 수월해진다. 그뿐인가? 빠른 부분을 해결하려면 느리게 가는 게 가장 빠르다는 역설도 체득하게 된다. 더욱이 이 선율, 화성, 리듬 들은 칠수록 아름답다. 쳐도 쳐도 질리지 않는다. 연습 자체가 즐겁다. 가장 중요한 건,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겸손이 자신감으로 바뀌고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된다.

음악의 힘, 예술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순간순간 느끼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차고 넘친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잘 하는 것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어한다. 좋아하는 걸 잘 하고 싶어서라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경쟁에서 이기는 데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오랜 시간 경쟁에 길들여져 온 결과일 것이다. 좋아하는 걸 몇 번 포기하다 보면 정작 하고 싶은 게 없어진다. 그래서 잘 하는 것 중에 덜 싫은 걸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잘 한다’는 기준이 무엇인가이다. 더 나아가 ‘잘 한다’는 게 도대체 무어냐고 묻고 싶다. 나는 잘 한다는 게 뭔지 모른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하는 것? 다른 사람보다 조금 수월하게 할 수는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좀 서툴러도 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하게 되는 것,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 하는 것 자체로 행복한 것, 바로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의 학생 하나는 여섯 개의 성한 손가락과 삼분의 일 혹은 그보다 짧은 네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모든 교재들이 열 개의 성한 손가락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소녀의 손가락에 맞추어 간단하게 바꾸면 된다. 소녀는 누구보다도 나를 기쁘게 해 준다. 작은 노래 하나를 배우면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다. 거기다 짧은 손가락도 같이 치게 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활짝 웃는다. 소녀의 행복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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