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성근 Jun 17. 2021

카프카를 읽는 법

프란츠 카프카, <변신>

벌레 같은 인간


다행히 우리는 인간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해 있는 끔찍한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죠. 가느다란 발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공중을 휘저어대거나 두꺼운 등딱지가 붙어있지도 않고 몸에서 이상한 체액이 흘러 냄새를 풍기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름다운가요? 영화와 드라마, 광고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뽀샵질한 인간들처럼 우리는 아름다운가요? 혹시 우리 안에 무능력하고 한심한 벌레 같은 인간이 꿈틀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혐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둡고 음산한 우리 내면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죠. 이 기괴한 소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이번엔 좀 독특한 방식으로 읽어봅시다. 이 소설이 만약 카프카가 괴상한 방식으로 쓴 자서전이라면 어떨까요? 그의 삶의 행적을 쫓아가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정입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큰 도시 프라하에서 제법 잘 사는 유대인 상인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호탕하고 남자다웠습니다. 그는 말이 많고 독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자수성가한 헤르만은 거만하고 이기적인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먹성이 좋고 몸집도 거대했으며 목소리가 커서 식탁에서는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며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해댔지요. 


카프카의 어린 시절 모습


이런 아버지와의 불화는 소설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레고르 잠자의 아버지는 문을 잠근 채 (벌레 소리로) 끙끙대는 아들을 향해 출근하라고 소리칩니다. 


<아버지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이젠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대며 그레고르를 앞으로 몰아댔다.> 


이 장면은 카프카가 수도 없이 겪었을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유약하고 섬세한 성격을 늘 비난했습니다. 아들이 사업체를 물려받기를 원했지만 성격 상 불가능하다는 걸 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법학을 전공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카프카가 예술 강의를 듣지 못하도록 돈으로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카프카는 대학에서 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보험회사에 취직해 회사원이 됩니다. 그는 퇴근 후부터 새벽까지, 자기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썼습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는 자기 방에 갇혀 지내다 외롭고 초라하게 죽습니다. 이 역시 카프카의 삶을 잘 보여줍니다. 


카프카 기념 동상. 체코, 프라하. 


인간 카프카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차별하는 오래된 문화가 있었습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사람들은 유대인을 도시의 한 지역에 몰아넣고 거기서만 살게 했는데 이런 지역을 ‘게토(ghetto)’라 불렀지요. 물론 카프카가 살던 시대에는 게토가 거의 사라지고 없었지만 카프카는 유대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사는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결핵으로 죽기 직전인 8개월 정도를 빼면 카프카는 평생 프라하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을 듯 건물이 밀집한 도시, 그 중 한 집의 작은 골방에 틀어박혀 밤낮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카프카는 일기에서 자신의 방을 가리켜 ‘나의 감옥-나의 요새’라 부릅니다. 


카프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였지만 잘 생긴 미소년 외모에 언제나 깔끔하게 차려입었으며 문학 클럽에 나가 고급 유머로 사람들을 웃길 줄도 알았습니다. 보험 회사에서는 잘 나가는 능력남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건설 현장에서 필수품으로 사용되는 안전모가 카프카의 발명품입니다. 그가 노동자 보험 업무를 맡은 후, 노동자들의 사고율이 2% 내외로 낮아져 정부에서 훈장을 줄 만큼 카프카는 일을 잘 했습니다. 



그는 분명 매력 있는 남자였고 여러 여성들과 사귀기도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가로 대성하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야망도 없이, 카프카는 꾸역꾸역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자신의 무의식으로부터 분신을 끌어내 악몽 같은 소설을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실체 없는 악당에게 쫓기고, 죽기 직전까지 비난받고, 이유없이 총에 맞아 죽습니다. 


<“도대체 문제가 뭔가? 자네 그렇게 방에 죽치고 앉아 예, 아니오라는 대답만 하면서, 부모님께 불필요한 걱정을 끼치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직장 일을 내팽개치면서, 도대체 자네, 뭐하는 건가?”> 


집을 방문한 직장 상사의 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학교 선생님에게서, 부모님에게서, 직장 상사로부터 듣는 비난이 아닌가요? 이런 말을 들으면 무섭습니다. 그 다음 어떤 벌을 받게 될지 두렵습니다. 거대한 딱정벌레에게 감정이입한 독자들은 생생한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벌레의 악몽은 이해할 수 없고 탈출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당신은 정말 인간다운가?


우리 역시 부조리한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죠. 화려하게 꾸며 놓은 아파트 단지들은 수용소를 닮았습니다. 주말이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피난 행렬을 이룹니다. 매달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잔혹한 강력 범죄가 터지고, 사람들은 악마에게 쫓기듯 시간에 쫓깁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름다운 인간일까요? 혹시 우리는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사육당하는 벌레가 아닐까요? 이런 상상이 지나치게 괴기스럽다면, 그저 ‘카프카스러운(kafkaesque)’ 상상이라고 해 두죠. 혹은 벌레처럼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카프카처럼 불안에 휩싸여 있다고. 


죽기 직전에 카프카는 자신이 쓴 글을 모두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친구가 유언을 어기고 책으로 출판하면서 비범한 천재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설령 그가 결핵에서 회복되어 살아남았다 해도 그는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의 여동생들과 가족들은 전부 2차 세계대전 때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추악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추함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이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카프카의 소설들은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벌레가 되거나 벌레처럼 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등딱지에 사과알이 박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레고르처럼 계속 의심하고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인간다운 인간인가? 


카프카 기념 동상. 체코, 프라하.


작가의 이전글 이청준, 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