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 사고 실험
광속의 개념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빛은 광속으로 날아간다. 그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이며,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여행한 거리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초등백과 과학 코너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는 인간이 지구에 다녀온(1979년) 지 얼마 안 되던 때였으므로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비상했다. 미국 드라마에는 온통 과학이나 공상과학, 유사과학에 근거한 시리즈들로 넘쳐 났다. <스타 워즈>, <스타 트랙>, <육백만 불의 사나이>, <슈퍼맨>, <E.T.> 같은 영화가 쏟아져 나온 때가 1980년대다.
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에 대한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은 말했다. “일본의 패배는 과학 기술에서의 패배였다.” 단 두 발의 원자폭탄을 맞고 이 신출귀몰한 무기의 압제에 못이겨 며칠 만에 항복을 함 셈이니 그의 한탄도 이해가 갈 만하다. 그들 입장에서 원자폭탄은 전혀 들어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기였다. 그 이후 일본은 과학입국을 표방하고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과학에 친숙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연장선에서 나온 TV 만화 영화들이 로봇액션물이다. <건담>, <마징가>, <매칸더브이>, <그랜다이져>, <철인28호>, <공각기동대>… 일본의 사무라이 전통과 로봇액션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로봇들이 일본도와 비슷하게 생긴 레이저빔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로봇액션물이 대유행이었던 것은 한 가지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아이들을 과학자와 엔지니어로 키워야 한다는 열망 말이다.
다시 광속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초등백과에서 발견한 광속 항목 대부분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공식 ‘에너지는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것이다’와 같은 말에서는 약간 근육 경직이 오기도 했다. 그런 복잡한 이해 방식 말고 나는 내 나름대로 낭만적인 방식으로 광속을 이해했다.
저 별은 수천만 광년 떨어져 있다 하고, 저기 저쪽 별은 수억 광년 떨어져 있다 한다. 빛이 일년 동안 가는 거리가 광년이다. 그렇다면 저 별은…… 맞다. 수천만 광년 떨어져 있다 함은 그 빛이 수천만 년 전에 출발한 빛인 셈이고, 수억 광년은 또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빛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전부 과거다. 밤하늘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장막이다.
나는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듯 쾌재를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모든 별빛은 과거에서 나라와 이제야 도착한 것이니 저것들은 모두 과거의 빛이다. 다시 말해 별들은 과거의 세계이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과거의 시대이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사라진 별도 있겠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가 우리가 보는 밤의 장막 위에 펼쳐져 있다. 나는 이 사실을 학교 선생님에게도 물어 보았고(정말 저 별들은 전부 과거냐), 과학 좀 한다는 형들에게 가서 물어 보기도 했다(너무한 거 아니냐. 그럼 현재라는 게 너무 초라하지 않냐), 사실 이런 질문에 그리 속시원하게 대답해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막대한 시간차를, 이해는 했으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그럴까? 10억 광년 떨어진 별에서 온 빛은 10억 년 전의 것일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별이 우리의 밤하늘에서는 빛날 수 있는 것일까?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고 화성은 40분 전의 화성이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려면 빛의 속도로(광속으로) 4.25광년을 가야한다는 게 모두 사실일까? 실은 그 보다 더한 이야기도 있다. 빛이 엄청난 중력을 가진 항상 옆을 지나갈 때는 그 구부러진 공간 속으로 빛이 휘어 들어간다는 말씀.
나는 다행히 과학자가 되지 않았다. 과학은 너무 많은 믿음을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았다. 내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의 막대한 과거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면 그저 믿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차라리 신이 이 세상을 일주일 동안 창조했다는 말이 더 그럴 싸하게 들린다.
우주의 이 막대한 시간들에 비할 때, 현재라는 건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가? 100세 인생, 그것도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찔끔 살다 가는 인생인데 왜들 그렇게 싸우고 전쟁을 벌이며 서로를 해하지 못해 안달일까? 우주의 눈으로 보면 우리 삶을 보면 극단적으로 허무해 진다. 자칫 열반에 이를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주의해야 한다. 우주 삼라만상을 우주의 눈으로 보지 말고 100년 쯤 단위로 끊어서 보는 게 좋겠다. 내 뒤로 100년, 내 앞으로 100년, 한 200년 쯤만 바라 봐도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광속 이야기 괜히 했다. 막 허무해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