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지탱하는 은밀한 힘
졸음은 불시에 닥친다. 혼자 멍하니 TV를 보고 있거나 강의를 들을 때, 서류를 검토 중이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언제든지 졸음은 들이 닥친다. 졸릴 때 뇌에서는 여러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각성 물질의 활동이 줄고 억제 물질이 늘어나며, 빠른 뇌파에서 느린 뇌파로 넘어가면서, 의식과 집중이 흐려지는 상태가 된다. 감각이 무디어지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다. 졸음이 밀려 올 때는, 두 눈꺼풀의 무게를 ‘장사도 이기지 못한다.’ 몸의 피로가 졸음으로 나타날 때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단 잠을 잔 후에야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다.
잠은 졸음과 다르다. 잠은 완전한 휴지 상태로 빨려 드는 것이다. 몸의 신경과 감각들, 장기들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만을 취한다. 혈압은 낮아지고 맥박은 느려지며 심지어 혈당도 감소한다. 잠은 죽음을 닮았다. 완전히 잠들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가 잠들었는지조차 모른다. 죽음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완전한 죽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감각이 완전히 중지되면 ‘의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졸음은 신호를 보내려고 깜빡이는 전등을 닮았다. 졸음은 의식의 각성과 중단 상태를 동시에 오가는 양면성을 갖는다. 의식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짧게는 수초에서 길게는 몇 분 동안 의식은 사라지지만 곧 다시 돌아온다. 아직은 의식이 몸의 감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자꾸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찾아 오는 졸음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운전 중이거나 기계를 조작하고 있을 때 졸음이 밀려오면 한순간의 졸음이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속도로의 휴게소나 졸음 쉼터는 졸음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준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무서운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졸음과의 싸움에서 패할 때가 있다.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졸음이 잠으로 이어지는 순간 쾅 하는 종말의 소리가 울린다.
안전한 졸음의 순간에는 달콤한 꿈을 꾸기도 한다. 아직 추운 봄, 따뜻한 햇살이 드는 도서관 창가 자리를 상상해 보라. 낮고 조용히 울리는 히터 소리, 사람들의 가벼운 기침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이런 분위기 덕에 우리는 안심하고 졸음을 받아 들인다. 꾸벅꾸벅 고개가 떨구어진다. 시야가 흐려지고 몸이 스르르 풀린다. 그러다 책상에 머리를 대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침대 위에 누운 자세는 아니지만 침대 위에서 잠을 잘 때처럼 잠은 깊다. 짧게 잠을 자고도 몸은 금세 반응한다. 잠깐의 수면으로 몸의 피로는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불면의 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잠을 자기 위해 뒤척이며 새벽 시간을 확인할 때는 시간의 압박을 받는 운동선수처럼 답답하다. 한창 때는 머리만 대면 코를 곯았던 김 과장도 나이가 들면 수면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다. 40대 이후에는 수면의 양도 줄고 질도 떨어진다. 깊은 잠을 이루기가 어렵고 새벽에도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몸의 피로가 쌓이고 낮에는 참기 어려운 졸음이 밀려 온다. 잠을 자야 할 때 자지 못하고 자지 않아야 할 때 잠을 자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수면 위생이 완전히 무너진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일상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지고 결국 병원을 찾게 된다. 운동 부족, 대사증후군, 수면 장애, 온갖 진단을 받고 두둑한 약 봉지를 받아 들면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잠을 잘 때 몇 번씩 꿈을 꾼다고 한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빈에 살던 한 의사는 인간이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해몽을 한 게 아니라 정신과학적 의미에서 꿈이 무엇인지를 탐구했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이 상징으로 말하는 언어다. 더 쉽게 말하면 꿈은 마음속 깊이 숨겨 둔 생각과 감정이 몰래 나타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오랜 연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간 안에는 여러 명의 인간이 있다는 것. 인간의 내면에는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인간이 있는가 하면 통제하고 감시하는 인간도 있다. 평소에는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했던 것이 꿈으로 재현된다. 그렇기에 꿈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잠과 꿈은 모두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는 점에서 신비롭게 느껴진다. 성서의 시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편 127편 2절) 잠은 열심히 애쓰고 근심하는 인간의 수고를 넘어 신이 주는 안식과 평안이라는 뜻이다. 축복 받은 삶이란 잠을 깊이 오래 자는 삶이리라. 이 바쁘고 어지러운 삶 속에서 잠이 주는 축복을 생각하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안식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