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처음 찼던 때

by 송성근

손목에 시계를 처음 찼던 때를 기억하는가? 아마 장난감 시계였을 것이다. 시간을 표시하면서 소리와 불빛이 나오는 그런 시계 말이다. 장난감 시계에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버튼이 있거나 버튼을 눌렀을 때 무언가 튀어나오는가가 중요하다. 본격 시계, 시간을 알려주는 진짜 시계를 손목에 차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학교에서 시계 읽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배우고 익힌다 해도 12진법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는 더딘 연습과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다.


그러다 드디어 시계 속에서 ‘시간’을 발견한다.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의 비밀을 푼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맞추어 살고 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어른들이 말하는 시간에 동참할 때부터 나에게는 ‘과제’가 주어진다. 몇 시까지만 놀 수 있고 몇 분 안에 무엇을 해 놓아야 한다.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계는 시간을 표시해 놓은 기계일 뿐이고 사실은 시간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간다. 시간은 신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머리 속에 있다.


시간은 인류의 거대한 약속이다. 열차 시간처럼 시간은 세계를 정확히 움직이게 한다. 태초의 시계는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시계였다. 아직도 자연 시계는 살아 있다. 낮에 활동하는 육식 동물을 피해 밤에 활동하는 초식 동물이 있으니까. 태양이 있는 시간이 광합성의 시간이고 밤은 잠과 휴식의 시간이다. 아무도 시간의 양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다. 시간은 자연의 정교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양이 한정돼 있기에 시간은 희소 가치를 갖는다. 근로 시간은 인간 노동의 가치를 시간 단위로 측정하는 사회 제도이다. 시간 당 얼마의 임금을 계산하는 것이 근로 계약의 기본이다. 공부도 시간의 문제다. 성적이란 시간 당 공부의 양과 효율의 결과다. 주어진 시간 안에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간이 주는 압박이 너무도 커서 인간은 절망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포기해 버리는 사람은 시간의 지배에 짓눌린 사람들이다. 시간을 무한정 자신의 욕망을 따라 썼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압박하는 독재자처럼 우리를 짓누른다.


시간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이 역시 고통을 수반한다. 시간을 순환과 반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나이를 연수로 헤아리지 않고 계절의 순환으로 보았다. “춘추(春秋)가 어떻게 되십니까?” 봄가을을 몇 번 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자연에서 순환과 반복을 보았던 옛 농경 사회의 시간 감각은. 이렇듯 시간을 순환과 반복으로 받아들이고 보면,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는 시간의 본질에서 살짝 비켜 서게 된다. 계절은 가고 오지 않는 게 아니라 다시 오니까. 순환과 반복 속에서 우리가 겪는 것은 다만 계절일 뿐, 시간의 절대성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처절한 싸움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시간관은 반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숙제를 안겨 준다. 반복 또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신들을 속이고 농간한 시지포스에게,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고통이 무엇일까를 숙고한 결과, 영원한 반복 노동이라는 형벌을 내린다. 반복은 그 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면 다시 한번, 반복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도 한 가지 있긴 한데 감각이 좀 예민해야 한다. 반복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벽에 자기 키를 재는 눈금자를 그려 놓고 매일매일 새로운 눈금자를 그려 나갔다. 똑같은 위치에 눈금자를 긋는 것 같지만 계절이 바뀌자 눈금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아이들은 반복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고는 기뻐했다. 변화와 다양성을 포착하는 것. 그것이 반복의 고통을 줄여 준다.


우리는 늙는다. 시간의 압제 중에서 가장 서글픈 지배 법칙이다. 우리의 육체 안에는 생체 시계가 있어 나이가 들면 세포의 분열이 줄어들고 몸에서 근육이며 뼈가 빠져 나간다. 그러다가 자신의 육체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이 빠지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영원한 반복, 무한 반복이 없음은. 그저 내 할 바를 다하고 최후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노쇠함과 쇠잔함은. 이는 시간의 일이다. 당신은 반복을 참고 견뎠고 버틸 때까지 버텼다. 이제 자연의 시간이 당선에게 무언가를 주려 하고 있다. 그것을 감히 자유라 말하기는 어려울 터다. 다만 완강히 버티던 삶에서 물러남이다.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고 황혼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스러지는 것이다.


청춘의 때를 아끼며 즐기기를. 게임만 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처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버리지 않기를. 무엇보다 반복을 참고 견딜 줄 아는 지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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