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참 어려운 주제다. 잘 모르는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잘 아는 사람, 심지어 가족과의 소통도 우리는 어려워 한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리고 문학 작품에서 ‘대화 없는 가족’은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당신의 식탁에 웃음꽃이 만발해 있다면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즐거운 식사 뿐 아니라 즐거운 대화까지 하고 있으니. 대화는 생각보다 어려우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세살박이 꼬마와 대화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이는 개념을 무기로 가진 자도 아니고 지식에 심취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대화를 잘 한다. 아이들을 웃기는 것도 쉽다. 아이들을 순식간에 상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거나, 자지러지게 웃게 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아이 눈을 쳐다보고 “똥!”이라고 외치면 그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질문도 끝이 없고 한번 말이 터지면 중지시키기도 어렵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대화를 잘 할까?
대화는 관심이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개념도, 지식도, 언어도, 이름들도 관심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아이들은 관심과 호기심이 많다. 여기저기에 자그마한 소리와 동작에도 아이들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니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거꾸로, 대화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면, 대화가 없는 게 아니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관심과 흥미가 없는 연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연인이라는 두 존재는 서로에 대한 집착에 빠진 사람들이므로. 대화가 없는 연인들은 이미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대화가 없는 식탁만큼 불행한 공간이 있을까? 말없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긴장감이 올라간다. 먹는 소리조차 내면 안 될 것 같다. 경계와 의혹의 눈초리가 음식 위를 날아다닌다. 시선들은 여러 방향을 헤매다가 각자가 먹는 그릇에 꽂히고 만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사람들과는 식사하기가 어렵다.
대화하기가 어렵다면 대화를 하려 하지 말고 관심을 가져 보길 권한다. 아이의 성적 외에는 할 얘기가 없다면 살짝 힌트를 드린다. 아이가 구독하는 채널이나 팔로잉 하는 대상을 물어 보라. 방언 터진 듯이 재잘거릴 테니까.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면 대화의 주제나 방향을 잡으려 하지 말고 상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보라.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 질문을 따라가면 대화가 이어진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대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국제 정세와 주식 동향을 물어 보면 될까?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십중팔구 싸움이 난다.) 이런 상대가 가장 어렵다. 말없는 아버지만큼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가 또 있을까? 그래도 시도해 본다면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물어 보라. “아버지는 어렸을 때 키가 큰 편이었어요?” 라거나 “아빠는 옛날에 뭐하고 놀았어?” 하면 그들은 소중한 보물을 꺼내듯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아버지, 그들은 추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대화가 안 통한다면 정치와 종교 얘기를 꺼내 보든가.
대화의 고수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 있다. ‘들어주기’다. 상대가 말하게 하고서 자신은 계속 맞장구를 쳐 준다. 듣고만 있는데도 대화 상대는 그 사람이 말이 많다고 느낀다. 이건 정말이다. 진정한 대화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우리 모두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다만 상대가 불편해 할까 봐 이야기를 못 꺼내는 것이다. 편하게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라면 우리는 무장해제하고 말을 하게 된다.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말에 대한 두려움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어느 정도 깨지고 넘어지는 걸 감수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말이 많으면 실수할 수 있다. 주책 맞아 보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깎아 먹고 들어가야 한다. 한 점 내 주고 석 점 따는 기분으로. 말을 아끼다가는 생을 놓친다. 살아 있는 순간을 무엇으로 채우겠는가. 살아 있는 순간은 결국 말로 남는다.
말을 잃은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렇다. 때로는 단순하게 보아야 한다고. 표현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단순한 생각을 따라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겉모양과 실체를 같은 것으로 본다. 개념과 사물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은 말의 자유를 누린다.
소통은 우리가 언제나 목마르게 사랑하는 행위다. 소통하려면 상처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말에는 각이 있고 날이 있다. 가끔은 다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우리는 서로를 부를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