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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22. 2023

남을 행복하게 하려고 애쓰지 말기

2023.03.31.

1.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깝게 느끼는 요즘, 그래도 우울해지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는 것은 아이들 덕이 크다.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작은 간식과 기-인 편지를 준비한다. 쓰다 보니 고마움이 잔소리로 변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담임이다. 



  안녕, 우리 1학년 3반들아.

  이 편지는 지난주부터 쓰고 싶었던 편지야.     


   너희들이 왔던 첫 주부터 사실 느꼈어.

 ‘ 대단한 애들이 왔다또 어마어마한 반을 만났다.’     


 여기서 '또'라는 것은 선생님이 담임하면서 운이 좋은 반들이 있었는데, 이미 첫 주부터 3반이 그런 반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첫 주라 그런 것일 수 있지,’ 나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선생님은 쉬시 간에도 쫓아 올라가서 '조용히 해'라고 무표정하게 화내다 나오기 일쑤였지.   

  

 그리고 이제 3월을 마무리하는 오늘, 나는 첫 주의 느낌이 틀렸다고 생각해. 

'또' 운이 좋은 반을 만난 게 아닌 것 같거든. 아무래도 이번에는 '또'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역대급'으로 좋은 반을 만난 것 같아.     


 나의 이 판단에 너희의 기초학력 진단평가 점수나 모의고사 점수는 전 - 혀 반영되지 않았어. 우리 3반의 평소 모습들이야. 그중에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지각이 없는 것이었지. 무려 한 달을 아침 지각생이 없다는 것은 선생님의 담임 인생에 처음이야. 아침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교실을 들어가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속으로만) 늘 감탄했어. 그 밖에도 인사를 잘하는 친구, 수업 시간에 대답을 잘한다는 친구, 나서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다양한 3반의 미담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전해 듣고 있어.      


  그리고 하나 더 고백하자면 선생님 사라졌던 날은 조퇴가 아니라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급하게 다녀온 것이었어.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는데, 적어도 ‘우리 반이 나 없는 사이에 말썽 부리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실제로도 나 없이도 잘 지내줬지. 편지로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해. 


  3반 덕분에 나는 여러 가지 일들 속에도 행복한 3월이었어.     


 자신을 대단하게 만드는 거,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 사실 이런 사소한 것들인 것 같아. 너희들은 이런 사소한 것도 대단한데, 담임이라고 한 명 있는 나는, 쉬는 시간마저 조용히 하라고 하지, 교복도 다른 반들보다 깐깐하게 체크하지, 놀아주지도 않고 맨날 공부하라고 하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3월 한 달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 


  이제 겨우 우리의 시간이 한 달 지났을 뿐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많아.

  앞으로 우리의 시간을 위해 추가로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     



하나남의 행복을 헤치지 않기.     


  내가 교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야. 오직 공부 때문에 교실에서 조용히 하라는 것이 아니야. 쉬는 시간에 누군가는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하고, 누군가는 예습이나 복습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자투리 시간일 수도 있어. 그리고 몰려들어서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무리 사이에 끼지도 못하고, 조용히 하라고도 못 하고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누군가가 있겠지.

 교실에서는 최소한의 수다만, 떠들고 놀고 싶다면 최소한 복도로 나가주기를 부탁할게. 나는 교실이 모두 뒤엉켜 시끄럽고 활기찬 공간이기보다는 각자가 안전하고 온전한 공간이길 바라. 

 나에게 교실은 집 다음으로 편하고 행복한 공간이야.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니까 너희들 청소 안 시키고 선생님이 청소해도 좋아. '우리'의 공간을 소중하게 여겨줘.     

 너희들에게도 교실이 집 다음으로 편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길 바라지만, 

 적어도 불행한 공간이 되지 않도록 나도 더 노력해 볼게.          



남을 행복하게 하려고 애쓰지 말기.     


 첫날도 선생님이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애쓰는 거야. 그런데 학교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아닌 '선생님이나 친구들' 남들의 눈을 더 많이 신경을 쓰지. 

 지금 스스로 원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리고,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엔 바쁜 입시에 쫓겨 이리저리 흘러갈 거야. 내면의 중심을 찾아. 선생님도, 친구도 그 중심을 대신 만들어 주거나 너를 찾아 줄 수는 없어.     

 스스로를 돌보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찍 일어나고, 밥을 제때 챙겨 먹고(최소한 급식이라도) 볕이 좋은 날은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간식처럼, 좋은 책 한 권쯤은 늘 서랍에 비축해 두고, 좋은 단어들을 골라 남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따듯한 말을 하는 것. 무엇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내가 되는 것     

 내가 하지 말라는 것들, 하라는 것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선생님도 매우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야. 공부뿐만이 아니라 뭐든 배우고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더라고, 그래서 너희가 느리게 배울 때 나는 그 답답한 마음을 매우 이해해. 선생님도 여전히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는 애를 쓰는 중이기도 해.


  다만 너희들을 계속 채근하고, 닦달하고 볶는 것 또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야. 그러니 뭐가 잘 안 되고 어려우면 나를 찾아와, 더 잘 설명하고 자세히 안내해 주고 도와주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니까.     

  그림도 그려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선배들 눈치도 봐야 하고.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데 체력은 떨어지는 고된 생활이 되겠지만,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돌보고 서로를 이해하고자주 웃고 많이 고민하며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랄게     


  선생님도 너희들의 2023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더 많이 잔소리할게♥)     


2023.03.31. 3월의 마지막 날담임. -



이렇게 편지를 쓰고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을 만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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