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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메 Sep 27. 2018

그녀의 고향, 마츠모토를 다녀오다

마츠모토시 미술관에서 마주친 쿠사마 야요이

2018.09.26

@Matsumoto, Nagano prefecture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

직장인이 되고 나서 노트북을 키며 여유롭게 글을 쓸 여유를 못가져봤다.


물론, 휴가 받으면 여행 갔다 오고, 운 좋게 공휴일 이틀이 연달아 있는 주에는 친정집에 내려가서 오랜만에 가족도 보고..

할 일은 다 해왔지만, 내 삶을 만끽할 만한 여유로움은 그 동안 가질 용기가 안났었다. 


그치만, 오랜만에 휴일을 혼자 보내게 되어서, 사는 동네를 벗어나 문화생활을 즐기다 왔으니,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이전 글에도 올렸을지도 모르지만, 난 현재 나가노현 나가노시에 거주하며 일을 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반년, 길어도 1년에 한번씩 전국순환을 해야 하는지라 내년 이맘때쯤에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을 지도 모른다. 


나야 워낙 외딴 곳을 왔다 갔다 하는게 적성에 맞으니 전국순환 자체는 내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잠깐의 시간이라도 내가 살아온 지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 전국순환할 맛도 안나고, 삶에 재미도 없어질 거같아서, 지금은 휴일마다 내가 사는 현내 각각곳곳을 돌아다니는 걸 일상의 낙으로 삼고 있다.




나가노현


나가노 현(일본어: 長野県)은 일본 혼슈 중앙부에 있는 현이다.

현 면적은 일본에서 4번째이며 옛날에는 시나노 국(信濃国)였으므로 그 두문자를 따고 ‘신슈’(信州)라고 불릴 경우가 많다. 현청 소재지는 북쪽에 있는 나가노 시(長野市)이지만 옛날의 시나노 국의 중심은 우에다 시(上田市)나 마쓰모토 시(松本市)였고 에도 시대에는 10개 이상의 작은 번이나 막부 직할지로 나뉘어 있었으며, 메이지 시대에 현청 위치를 둘러싸고 나가노 시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와 마쓰모토 시를 중심으로 한 중남부 사이에 심각한 지역 감정이 생겼다. 이 때문에 일본은행의 지점이나 국립 신슈 대학교의 본부는 마쓰모토 시에 설치되었다.

현재도 지역 감정은 남아 있으나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현의 노래 "시나노노쿠니(信濃の国)"는 나가노 현 출신자라면 대부분 부를 수 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으로 치면 지리적으로 무주랑 비슷한 곳이랄까나.




오늘은, 나가노현에서 멋쟁이를 담당(주관적인 시점)하고 있는 마츠모토시를 가기로 했다.


사실, 마츠모토는 나가노에 살기 시작하고 나서 벌써 3번이나 다녀온 곳이다. 

그런데 왜 또 마츠모토를 택했을까.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인 작품이 미술관 앞에 전시되어 있다.


이번 마츠모토행은 바로 쿠사마 야요이, 

오로지 그녀의 작품과 세계관을 보기 위함이다.




땡땡이와 줄무늬가 가득한 작품들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방가르드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그녀는 바로 나가노현 마츠모토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그런지 마츠모토시에게 쿠사마야요이는 랜드마크적 존재이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사방 곳곳에 그녀의 오마주를 마주칠 수 있다. 


그런 그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마츠모토시 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 자체는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미술관이라 그녀의 이름은 안걸려 있었지만, 그녀의 고향답게 건물 외관은 온통 쿠사마 야요이의 세계관에 뒤덮여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상설전시장에 있고, 상설전 이외에도 다른 테마로 특별전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주목적은 쿠사마야요이기도 했고, 다른 특별전의 테마가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만 한 테마가 아니었기때문에, 상설전만 보는 티켓을 샀다.


어른 410엔, 고등/대학생 200엔


도쿄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들에 비하면 아무리 상설전 티켓이라도 거의 반값에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게다가 시립미술관이라 크게 기대 안했는데 건물도 깨끗하고 티켓도 나름 공들인 티켓이어서 410엔이란 값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상설전시장은 3층에 위치해 있어서, 난 안내 데스크 뒤에 있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바로 3층으로 향했다.

벽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가보니 통로가 땡땡이 세상이더라.


단순한데, 아름답다. 

누구나 알 만한 뻔한 패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감탄사가 나오게끔 만드는게 그녀의 힘이다.





통로를 지나면, 전시장 입구에 다다랐다.


장내는 카메라촬영 일절금지라, 조용히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놓고 안내원분한테 티켓검사 받고 입장했다.

(그래서 이 글 자체에는 쿠사마야요이의 전시작품은 거의 없다)


한적한 평일 오후에 와서 그런지, 내가 입장했을 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나와 각 코너에 상주하는 안내원들 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안내원의 감시를 애써 신경 안쓰는 척하며 그녀의 작품 하나하나를 봤다.


사실, 전시작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쿠사마야요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흔한 호박 하나조차 없다.


양과 인지도에 포커스를 맞춘 기대를 가지고 와버리면 생각보다 실망해버릴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런 테마를 가지고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구나.

과연 그녀는 왜 이 주제를 이렇게 표현했을까?


곱씹어 생각하며 보는게 즐거워지는 그런 전시작품들이 가득했다.


사랑, 영원, 생, 사, 우주 

등등..


자주 쓰는 단어들이지만, 눈에 안보이기에 표현하기가 더더욱 어려운 그런 단어들.

그걸 그녀는 그녀만의 세계관으로 표현해내었다.



그녀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보는 그녀의 세계관은, 

세계적인 예술가 야요이 쿠사마가 아닌,

인간 쿠사마 야요이를 되돌아보는 거울같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름 천천히 돌아다녀 15분 지나서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보니 은근슬쩍 존재감 뽐내는 자판기가 보였다.

이 자판기도 쿠사마야요이의 작품 중 하나더라.

오른쪽 자판기 맨 위에 있는 땡땡이캔을 멀리서 봤을 때

처음엔 코카콜라랑 야요이 콜라보에디션같은건가?!?!하고 흥분하면서

무조건 사야지, 라는 마음으로 다가와보니 그냥 전시작품이어서 김빠져버린건 안비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반복하고 나서 다시 미술관 외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튤립과 유리에 그려진 빨간 땡땡이들.



사실 지금까지 그녀의 이런 패턴들은, 

늘 도쿄 도심이나 세계 각국 대도시에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는 인상이 컸다.

작년에 오픈했던 긴자식스가 오픈 기념으로 쿠사마야요이의 땡땡이 호박 오마주를 

천장에서 주렁주렁 매달아놨던 것처럼.

그런 화려하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내겐 컸었다.



그런데, 이렇게 산에 둘러쌓인 자연도시 속에 우두커니 자리 잡은 빨간 땡땡이 미술관을 보니,

그녀의 세계관, 그녀의 정신세계가 마츠모토의 공기와 초록 자연과 잘 어울린다.


그녀의 존재 자체뿐만 아니라, 존재의 이유도 이 마츠모토라는 환경이 만들어 준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이나 세계에서는 유독 정신질환을 예술로 승화시켜 이겨낸 예술가 이미지로 자리잡혀 있지만,

정신질환에 포커스를 맞추기엔 마츠모토의 환경이 준 영향력도 분명 컸을 것이다.


그런 시점을 배운 하루였다.




미술관에서 역을 향해 걷다 보면 나오는 나카마치 거리


이번 마츠모토 방문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마침 저녁시간이 되가고 있었기에, 마츠모토 하면 유명한 나카마치 거리에 들러서 전부터 계속 가보고싶었던 나카마치 카페에 들렀다.


팬케이크가 유명한 카페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주변 테이블은 모두 펜케이크를 주문해서 먹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핫도그플레이트를 시켰다지..



여담이지만 이럴 땐 일본에 사는게 마음 편하다.

혼자 행동하고 혼자 다른 걸 먹고 혼자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 안쓰니까.








식후엔 헤이즐넛 카페 한잔 하면서, 아까 미술관에서 산 쿠사마 야요이 아트북(2500앤)을 정독했다.


나가노의 매력을 하나 더 발견하고 배운 거같아 뿌듯했던 하루.



내일부터 다시 일 시작.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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