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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an 10. 2022

12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안녕, 겨울.

https://youtu.be/u2_H3PCTgJk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설레는 기운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무언가 새롭고 뜨거운 일이 생길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 아주 오랫동안 한겨울의 일탈을, 강추위 속 모험을, 뜨거운 사랑을 꿈꿨지만 나의 겨울은 언제나 조금 지루하고 뻔하게 흘러갔고, 실망감으로 봄을 맞았다. 그래도 매해 겨울이 오면 설렘은 피어올랐다. 나는 하얀 눈, 모닥불, 눈사람,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이는 조명을 상상했다. 하얀 눈이 주는 신비로운 낭만과 이른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 어린 내게 마냥 멋져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란 부산에서 눈이 내리는 일은 드물었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은 영화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날이 차가울수록 포근한 무언가를 원했고, 원함은 막연한 환상을 남겼다. 앙상한 겨울나뭇가지를 보면서 나무의 지나온 일년이 아니라 곧 찾아올 새싹을 상상했다. 매해 겨울이면 겪게 되는 변화, 이별과 만남이 내게 깊은 감정의 곡선을 남겼고, 특별한 추억 없이도 겨울은 충분히 특별했다.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오직 겨울이었다.


새해가 시작되면 마치 새로 태어나기라도 하는 것 처럼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안 좋은 일들을 12월 31일에 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침표를 찍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꽤 오랫동안, 그렇게. 결심하는 것만으로 이미 무언가 성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던 때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끝나는 것은 없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있다.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기억이 아련한 향수를 부른다. 반복되지만 같은 것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변화는 오고, 무심하게 변화에 무력해진다. 반복을 통해 새로움을 볼 수 있다면 완전한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수년전 새해 첫날 이른 아침, 엄마와 함께 동네 뒷산을 올랐다. 새해 첫 일출을 보며 다짐을 다지자는 뜻에서 였지만 우리는 일출시간을 놓쳐버렸다.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해는 이미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한 남자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그의 모습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그가 뭐라 기도를 올리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기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에는 경건한 아름다움이 있다. 두 손바닥에 온 마음을 모아 그것들을 만나게 하고, 고개를 숙여 부끄러운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다. 겸손한 마음이 없고서는 나를 버리고 나보다 더 큰 무언가(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조상이든, 가족이든)에게 기도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성당에 다니던 어린이 시절에도 기도를 올리는게 민망하고 부끄러웠는데 그때 내 기도라는 게 ‘공부 잘 하게 해주세요. 살 빠지게 해주세요.’ 뭐 이런 거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022년 1월, 나는 바란다.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과연 … 현실성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그래도! 제발!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매일 까먹고 짜증이 먼저 나가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매일 아침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나머지는 다짐들.

부지런할 것.

열심히 글을 쓰고, 공부하고, 찍고, 편집하고,움직이고, 읽고, 보고, 놀고.


그리고 눈이 좀 왔으면 좋겠다.

작년 이곳에 눈이 많이 왔었다는데 올해는 영 시원찮다.

하얀 눈 밭 위에서 발광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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