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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ug 03. 2022

My very first 텃밭

무식하고 게으른 자가 텃밭 농사를 하면?

내 생애 첫 텃밭 농사가 제대로 망했다. 무식하고 게으른 자가 텃밭을 일구면 어떻게 되는지 내 텃밭의 처참한 풍경이 그 결과를 보여준다.


모종 판에 씨앗을 뿌리고, 아침저녁으로 조바심을 내며 모종판을 살피고, 앙증맞게 올라오는 떡잎에 환호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줄기와 잎이 대견해서 자꾸만 보고 싶고, 밭에 정식을 하면서는 머지않아 주렁주렁 달릴 열매들을 흐뭇하게 상상하던 나의 지난봄이여! 아! 그때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벌레가 갉아먹어 바삭하게 부서지는 수박 잎, 숨 쉴 틈 없이 빽빽한 토마토 숲, 손만 대면 툭하고 떨어지는 애처로운 오이, 매일 지치지 않고 잎 뒤에 알을 까는 벌레와 나의 뜨거운 손가락 싸움에 몸살이 날 법도 한데 그런대로 선방하고 있는 가지를 볼 때마다 긴 한 숨이 나온다. 그래도 첫 텃밭 농사가 망해서 참 다행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나의 텃밭 농사가 망해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운이 좋아서 어쩌다 보니 처음 상상한 그 장면을 보게 되었더라면 나는 내년에도 똑같이 무식하고 게으른 텃밭 농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작년엔 잘 됐는데 왜 그러지?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 하지 않고, 엉뚱한 데서 찾으려 했을 것이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에 의존하면서, 지금 내가 느끼는 처참함과는 차원이 다른 짜증과 온갖 얄궂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처음이니까, 재미로, 아님 말고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 하지만 기왕 하는  조금만  정성을 들였다면  보다는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매일 아침 텃밭을  때마다 든다. 물론 성공한 작물들도 있다. 처음 심은 오이(스낵오) 하도 비실거려 뒤늦게 텃밭에서 조금 떨어진 땅에 오이를    심었는데  녀석들이 엄청난 건강함을 뽐내며 똥똥한 오이를 생산해내고 있다. 시간대별로 크기가 달리지는 오이를  때마다 기쁨의 비명이 튀어나온다. !!!! —-!!! 아따,  맛에 텃밭 하지! 그렇게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각종 허브들(페퍼민트, 오레가노, 타임, 바질, 오팔 바질, 라벤더, 딜)과 아스파라거스, 샐러리, 파슬리도 별문제 없이 잘 크고 있다. 씨를 뿌려만 놓았을 뿐, 정말 혼자서도 알아서 잘 크는 고마운 식물들이다. 딜을 따서 딜-레몬 버터를 만들었고, 바질 잎을 왕창 뜯어다 페스토를 해 먹었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땐 타임도 넣고, 민트는 각종 음료에 넣어 먹고 있다. 그리고 가을이 오기 전에 잎을 따다가 말려서 두고두고 먹을 계획이다.


첫 농사가 망했으니 다음에는 보다 성의를 다해 공부하고 그것을 토대로 식물이 좋아하고, 일 하기에도 편하게끔 땅을 고르고, 배수가 잘 되도록 두둑을 만들고, 야무지게 심고, 거름도 주고, 지지대를 꽂아 주고, 농약의 편리함 대신 조금 더 수고를 더해 벌레와의 사생결단을 벌이고(이때는 내가 타노스다), 식물이 배고픈 시간에 물을 주고, 그렇게 하면 (그런다고 반드시 싱싱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더 큰 애정과 노력으로 텃밭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내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들로 식탁을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고 큰 즐거움이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작은 열매 하나에 감사하게 된다. 무식함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게으름과 불량한 태도를 버리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하... 나는 언제쯤 내가 원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렵다.


ps. 수박은 6-7kg까지 자라야 하는데 더 이상 광합성을 할 잎이 남아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1kg이 조금 넘는 미숙한 열매를 수확하고 뿌리를 모두 뽑아버렸다.

토마토는 지난 비바람에 줄기가 꺾어진 애들을 솎아 냈다.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인데. 부실하기는 해도 살아남은 애들은 이제 숨통이  트이겠지.

남들은 기록용으로 사진고 찍고 하는데 본인은 텃밭 사진 한 장 없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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