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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an 09. 2024

안절부절 게으름뱅이의 자기 계발

한 달 달리기 챌린지를 하고 느낀 점

타고나기를 게으른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도 되나 싶지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자신 있게 말한다. 보통 사람이 하루에 10개의 과제를 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하면 나의 경우엔 6개 정도가 맥시멈이다. 예전엔 그것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나 역시 10개, 15개, 20개의 일을 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당장 불필요해 보이는 일들을 하는데 관심이 없어서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6개도 힘에 부치기 시작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무리다 싶으면 웬만한 일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쳐내기 시작했다. 매번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놓고 일을 하는 버릇 또한 생겼다. 헌신하지 않는 삶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그럴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 원인은 최근 몇 년, 일의 부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 유년시절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간절한 바람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쟁취해 본 적이 없다. 내 욕망이 크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많은 것을 쉽게 얻었다. 타인의 관심, 부모의 사랑, 성적은… 공부를 잘하고는 싶었으나 늘 말뿐이었고, 그까짓 거 대충 해도 중위권과 상위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는데 마음만 먹으면 상위권으로 금방이라도 올라갈 수 있을 거란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은 그냥 자신감에만 머물렀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 한심했구나 싶다. 많은 아이들이 대통령, 과학자, 간호사, 의사, 소방대원, 경찰, 등등을 장래희망으로 꼽던 시기에도 나는 무언가 창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열망했는데 내 주위의 모두가 나의 이런 열망을 응원해 주었고, 나는 내 운명이 나를 창작자, 예술가로 데려다줄 거라고, 나의 노력이 아니라 나의 운명이 예술에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이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구나 싶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과거를 다시 써보던 시절도 지났다.

쟁취하지 않은 기회는 결국 내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부정했지만 나는 실패자다.

이제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인정한다고 해서 서글퍼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렀다. 오래된 꿈, 포기하기에 아까운, 어쨌든 어중간한 재능으로 나름 노력했으나 내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부서진 꿈들의 조각이 남겨진 곳에서 나는 버려진 시간들과 함께 늘 조마조마 쫓기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내 시간은 모두 내 것인 동시에 모두 내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을 역시 내가 낚아야만 했다. 흘러가는 시간 그 아래에 내가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붙들어야 했다. 누구도 나의 글을 기다리지 않고, 누구도 내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고, 누구도 나의 생활을 살피지 않았다. 나 밖에 없었다. 나를 챙길 사람은.

투 두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 그러니까 청소하고, 샤워하고, 장을 보는 일, 계획하지 않아도 그냥 하게 되는 일들까지 리스트에 올렸고, 일이 완료될 때마다 체크 표시를 했다. 해야 할 일을 까먹지 않기 위해 작성하는 게 투두리스트인 줄 알았는데 나의 경우엔 아주 작은 성취감이라도 획득하기 위해서였고, 리스트는 빠르게 효력을 발휘했다가 빠르게 그 힘을 잃었다. 늘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아도 어차피 할 일들인데… 그렇게.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내가 수행한 과제들이 모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쉽게 그 일에 대한 흥미도 관심도 사라진다. 예를 들어서 영어원서 소설을 한 권 읽는다고 해 보자. 하루 1시간 원서 독해하기를 하기로 하고 책을 펼친다. 한 번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그냥 읽어본다. 이해가 되는 문장도 있고,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문장도 있다. 전체적인 의미는 알 것도 같고, 아무튼 모호하다. 이제 한 문장씩 천천히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 본다. 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품사에 따라 문맥에 따라 다양하다. 이 문장에서는 아마도 이 뜻인가 보다… 그렇게 단어를 기록한다. 어떤 문장은 모든 단어의 뜻을 다 아는데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문장은 일단 내버려 둔다.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2페이지 겨우 읽었고, 30개의 단어를 검색했다. 단어를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머릿속에 저장한다. 다음날이다. 어제 독해한 문장들을 읽는다. 어제 몰랐던 단어들을 오늘도 모르겠다. 복습을 할까 하다가 아직은 적응단계인 거겠지.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은 욕심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오늘도 역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도 오늘은 2페이지 반을 독해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간다. 이제 책갈피는 책의 1/3 지점에 도달했다. 한 시간 원서 읽기가 내 일상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자신감과 함께 의심이 싹튼다. 나는 내가 찾아본 단어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단어장에 기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첫날 이후로 따로 복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복습까지 하려면 한 시간이 모자라고, 한 시간이 넘어가면 매일 하기엔 무리다. 이쯤에서 중간점검을 해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단어장을 펼친다. 단어들이 전보다 친숙하다. 좋은 신호다. 이 단어를 이용해 문장을 만드는 건… 아직 어렵다. 전혀 새로운 단어들도 보인다. 그럴 수 있다. 이제 책의 첫 장을 펼친다. 단어를 보고 왔으니 확실히 이해가 잘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가 읽은 걸 유창하게 설명하기엔 무리다. 이 문장은 아마도 이런 뜻인가? 그렇게 이해하고 다음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작가는 왜 이런 말을 하지? 혼란스럽다. 감으로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어만 찾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문법공부도 같이 해야 할 것 같다. 답답하다. 한 시간은 부족하다. 가볍게 시작한 과제가 갑자기 괜한 짐처럼 느껴진다. 이제 책을 읽을 때마다 모르는 문장을 이해하고, 책을 읽으려 하는 대신 이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될 텐데… 괜히 시간만 버리는 것 같고, 그래도 이왕 시작을 했으니 끝은 봐야지. 하다 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지… 긍정과 부정이 내 집중력을 방해한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지속된다. 한번 시작된 의심은 세력을 키워나간다. 내가 이렇게 영어책 읽어서 뭐 하나. 영어 실력이 전혀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 공부법이 잘못된 건가?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영상들을 찾아본다. 볼 수록 모르겠다. 그래! 이거야! 하는 게 없다. 그러다가 어느 바쁜 하루, 어느 아픈 하루를 맞이한다. 또 어느 우울한 하루가 온다. 이도저도 아닌 노력이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만들어낸다.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의미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과제가 그렇게 마무리된다.


무력함에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무력함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가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매사를 시시하게 보게 만든다. 이 양극단을 오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고, 우울감에 빠지고, 시간은 흐르고, 또다시 좌절하고, 온갖 부정적이고 지질한 감정들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랜 방황의 시간을 지나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 나의 한계, 나의 가능성, ‘나’라는 사람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어린 시절 막연히 꿈꾸던 멋진 어른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내게 무언가 남아있음을 느낀다. 당장 내 안에 남아있는 이것을 키우지 않으면 이것 역시 사라지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나는 조금 초조하다.


2023년 12월 1일 아침.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달리기를 하는데 2023년을 마무리하기 전에 무언가 하나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시골로 이사를 하고, 통장에 모아둔 돈만 까먹고 있다가 막막하던 중, 6월에 일자리를 구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오랜만에 영상작업도 하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 12월 한 달. 매일 달리기를 해보자!

그렇게 즉흥적으로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챌린지 첫 주는 에너지가 넘쳤다. 아무리 날이 추워도 달리는 동안에는 추운지 몰랐고,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챌린지를 생각해 낸 내가 기특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면서 제발 내가 달리기를 하는 시간에는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과음한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나갔고, 그걸 하는 내가 기특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면서 종아리가 땅겨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일어나 스포츠 브라를 입고 장갑을 끼고, 헤드폰을 쓰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신기하게도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종아리가 땅기지 않았다. 달리기를 매일 하면 다리에 엄청난 무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한 달 챌린지가 아니라 두 달, 세 달 챌린지도 가능하겠는데?… 하하하!

그런데…

3주째가 넘어가면서는 어서 12월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한 달은 너무 쉽겠는걸? 했었는데. 챌린지는 역시 챌린지였다.

첫째 주에는 비가 오면 안 되는데 했던 마음이 장대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되었다. 겨울 아침 전기장판 따끈하게 데워진 침대 밖으로 나오는 일은 최대한으로 미루고 싶었다. 그럼에도 내가 몸을 일으키고 양치질을 하고, 잠옷을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아직 새까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달리기를 시작하면 시작만 하면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몇 분 전 머릿속에 가득했던 핑곗거리는 모두 사라지고 달리기를 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끝내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지 그 기분을 감각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31일 중 폭설이 내린 이틀을 제외한 29일을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챌린지를 하면서 미루고 미루던 15km 달리기에 성공했고, 10km 기록은 1시간에 근접했다. 2024 하프 마라톤 출전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최소 5km를 달릴 수 있는 체력에 도달했다.


한 달 챌린지의 장점은 한 달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에 제한을 둠으로 해서 고비가 왔을 때 그 고비의 순간을 넘기는데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데 있다. 게다가 대단한 변화나 발전은 아니지만 매일 하나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성취감이 다른 일을 할 때도 적지 않은 동력을 발휘한다는 거다. 하나의 행동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과는 때로 다른 더 큰 무언가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 자체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오로지 성과라는 명목으로 챌린지를 하게 되면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했을 때 나를 다그치게 되고, 무리해서 챌린지를 이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다치는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나를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열망은 자주 좌절된다. 나는 내가 지금보다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지금보다 성실했으면 좋겠고, 타인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진솔했으면 좋겠고, 담백했으면 좋겠다. 무의식 중에 나오는 나의 차갑고, 교만한 언행에 나는 얼마나 많은 반성을 했는지…  나는 믿고 싶다. 이 또한 나아질 수 있다고. 달리기 챌린지를 통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기록을 내 것으로 만든 것처럼. 매일의 힘. 매일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 그 의지로 결국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2024년. 매달 다른 ‘한 달 챌린지’를 하려고 한다. 한 달이 결코 만만한 시간은 아니지만 한 달은 할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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