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만남.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작품을 만나다. 강아지를 만나다. 대체로 긍정적인 느낌이 전달된다.
최근에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60대 중반 여자로 이 글에서 그녀를 ’에프‘라 지칭하겠다. 에프와의 만남을 과연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했다. ‘만남’은 나의 자발적 참여를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것은 만남보다는 ‘사건’이라 지칭하는 것이 적합한 하지 않나? 하지만 일회성이 아니라 이미 수차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역시 ‘만남’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결론지었다. 비자발적이라 하지만 내가 이 ’ 만남‘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이 만남이 내 잔잔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고, 이 만남의 상대를 통해 천박한 호기심과 연민, 얄팍한 낭만을 실현하려고 하는 나의 욕망을 스스로 검열하기 위해서다.
어느 비 오는 저녁,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지루하게 앉아 있는데 창밖으로 고함지르는 소리, 이어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는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에프가 들어와서 내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지루한 가슴에 갑자기 돌멩이 수백 개가 동시에 떨어진 것처럼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온몸의 피가 위로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씩씩거리는 에프는 당장이라도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 기세였다. 뉴스에서나 보았던 끔찍한 사고의 헤드라인들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귀촌한 40대 여성 A 씨. 정신이상자의 폭행에…’
만약 저 미치광이가 공격을 시작하면 나는 나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전화기를 들어 경찰에 신고를 한들, 지금 이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데. 칼이라도 휘두르면… 여기엔 나를 방어할 그 무엇도 보이지가 않는구나.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에프의 폭언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에프의 사투리 억양과 두서없는 말, 그리고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나는 에프가 하는 말 전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알아들은 말들을 조합해 보자면 얼마 전 내가 일하는 곳 앞에 있는 공터에서 행사가 있었고, 거기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급기야 무력을 써서 끌어내려고 했는데 에프의 말에 따르면 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는 거다.
“나는 거기 없었어요. “
나는 거듭 해명했다. 이 미치광이가 나의 해명을 과연 믿을까… 불안해하면서.
다행히도 에프는 나의 말을 믿는 눈치였고, 한차례 말을 쏟아내면서 흥분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의 말투가 차분해지자 나의 긴장도 함께 느슨해졌다.
“미안합니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데 정신이 왔다 갔다 해. 소리쳐서 미안합니다.”
에프는 실실 웃으며 내게 사과를 했고, 혼자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다가 10분쯤 지난 뒤에 다시 한번 미안하다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에프가 고함을 지르기는 해도 폭력을 쓰는 광인은 아니구나… 하면서 안도했으나 순간 급격히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퇴근을 하는 순간까지 두근거림은 지속되었고,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에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에프를 만나기 전까지 광인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조금 전의 대화도 대화라기보다 에프의 일방적인, 거의 독백에 가까운 쏟아냄이었지만 아무튼 광인과 마주 서서 눈을 마주치고 시간을 보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무엇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불편함일까? 나는 천천히 하나씩 순서대로 그 ’ 사건‘이 일어난 순간들을 재구성하면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첫째, 내 신체 반응. 예상치 못해던 스트레스 공격으로 인한 두근거림. 모르는 사람이 나를 향해 갑자기 폭언과 욕설을 쏟아낸다면 누구라도 당혹을 넘어 순간적 공포를 느낄 것이다.
둘째, 트라우마.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일터에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전에 없던 불안을 가지게 되었고, 만약,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거기에 안전하게 대응할 방도가 없다는 데에서 공포까지 더해진다.
셋째, 에프의 정신과 병력. 에프는 자신이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했으며 과거 여러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도 내게 고백했다. 나중에 화를 가라앉히고 내게 사과를 했지만 그는 광인이고, 자유인이다. 그가 언제 또다시 그때의 그 기분에 사로잡혀 나를 공격하러 올지 모른다.
넷째, 에프가 내게 한 말들이 무섭다. 발가벗겨져서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 전후맥락 없이 그 이야기만 들었을 때 소환된 그동안 내가 보아온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 끔찍한 일화들.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입. (에프의 이는 모두 작은 알갱이처럼 겨우 잇몸에 붙어있었다.)
에프의 삶이 궁금했다. 삶의 무엇이 그를 광인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 동시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되지는 않을까 불편했고, 그와 나 사이에 어떤 교집합이 생길까 두려웠다.
광인의 삶이 마치 그것이 수많은 인생 중 선택가능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에프를 통해서 그들의 삶, 내게는 창작물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 미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 얼마나 잔인한 호기심인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그것을 이용하려는 데에 있지 공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여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다음 날 출근을 했을 때, 나는 자꾸만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혹여 에프가 지나가다가 또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떡하나, 에프가 보이면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불쾌한 긴장감이었고, 불필요한 불안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다. 하루종일 에프만 경계하면서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업무에 열중하는 동안에는 에프를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에프는 다시 나타났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흥분시키지 않기 위해 나의 말과 행동, 표정까지 조심했다.
에프는 활짝 웃으며 어제는 미안했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이 화가 났던 그날의 상황을 내게 다시, 설명했다. 이번에 나는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에프의 편을 들어주었다. 정말 속상했겠다고. 화 풀라고. 그렇게
에프는 나의 반응에 만족하는 듯 보였고, 나는 안심했다. 우리의 짧은 만남이 오늘로 끝나기를 나는 바랐다.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게 싫었다.
나의 길고 지루한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이 왔다. 나는 약간 긴장상태로 근무를 시작했다. 에프의 예고 없는 방문. 마음속으로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내 공간 밖으로 밀어내면서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연기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에프와 대면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괴롭혔다. 나의 시간은 대체로 조용하고 한가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 에프가 나를 찾으면 어떡하나. 그 걱정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우려대로 에프의 방문이 방해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순간이 왔다. 나는 안절부절 이러지 말라고 했고, 에프는 대노했다. 내게 ‘너는 사람도 아니야. 내가 다시는 너한테 말을 거나 봐라.’하고 말했다. 나는 울상이 되어 ‘왜 그러시냐.’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에프와의 만남이 해프닝으로 끝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근무하는 내내 나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에프가 내게 악담을 퍼붓고 하루가 지났다. 에프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나고, 잠깐 바깥 업무를 보러 나가는 길, 길 위에서 에프와 나는 마주쳤다. 그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골목길로 빠질까? 바닥을 보고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에프는 며칠 전 내게 화를 낸 것을 잊은 것인지 나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며 ‘아이고 예쁘다. 밖에서 보니 더 예쁘네.’ 칭찬을 해주었다. 나는 웃으며 고맙습니다. 인사했고, 내가 먼저 인사를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인사를 하고, 에프가 그 인사를 받아 준 그 순간 우리의 만남, 내게 불편하기만 했던 만남은 인연이 되었다.
하루에 한 번씩 에프는 문을 열고 내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 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나는 에프가 하는 이야기의 절반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제는 최선을 다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간중간 질문도 하면서. 며칠 전에는 14살의 에프가 고등학교 선생님 집에서 식모살이한 이야기를 짧게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까 봐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나는 에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다. 에프 역시 이야기를 할 때는 집중한 얼굴로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려는 것처럼 진지하다. 간혹 말을 잃을 때도 있지만 이야기를 잘 구성해서 전달한다. 그리고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나 가요~‘ 하고 나간다. 이제 루틴이 되어가는 우리의 만남은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러다 또 갑자기 흥분할 수도 있지만 그가 흥분하는 지점을 알기에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 알아서 조심하고 있다.
나는 에프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가 약을 잘 챙겨 먹었으면 좋겠고, 길 한복판에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내지르며 욕설을 퍼붓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신의 인생을 내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에프의 이야기를 소재거리로만 대하지 않기를. 내가 알 수 없는 삶들을 분석하는 대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나를 방해하는 것들을 내치는 대신 그것들과 함께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연휴가 지나고 첫 출근이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는데 에프가 보이지 않는다. 안부가 궁금하다. 과연 우리 사이에 우정이 생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