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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모비딕 Apr 23. 2019

난 5년 전부터 퇴사를 품고 살았다

세상의 모든 팀장들에게

팀장 직책을 맡은 첫날, 머릿속에 그렸던 생각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겪어 왔던 이야기를 할까 한다.


2014년, 4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서 팀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다는 이유라 하기에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회사 조직이 개편되는 시점에 운도 따랐으리라. 그저 그때는 사람 좋은 선배로써 후배들에게도 신임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직책에 대한 기대와 의지 보다 평소 훈련되지 않은 팀장 자리는 너무 힘에 겨운 자리였다. 개성이 강한 30명 남짓한 홈쇼핑 PD로 구성된 팀에서 리더쉽은 쉽게 발휘 되기 어려웠다.

부문, 팀에 부여된 미션에 있어 팀원들은 철저히 스스로를 방어하며 저항하기도 했다. 본인들이 세워둔 방송과 매출 달성에 대한 기준 등에 반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설득이 필요했다. 난,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란 힘들며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지냈다. 그렇게 어설픈 초년팀장의 시간은 흘러 갔다.


한해 뒤 2015년 쌓이고 쌓였던 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고통에 대한 염증이 한번에 터져버렸다. 당시 공영홈쇼핑, 데이터방송 등 신규 홈쇼핑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관련 인원들이 스카우트되거나 자원하여 빠져 나갔다. 상대적으로 남아있던 팀원들의 업무는 가중되며 개개인의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쳐 업무에 지장을 주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신규 인력 채용에 적극적이지 않은 회사의 문제와 홈쇼핑 시장에서의 전문인력인 PD의 부족현상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모든 책임을 온전히 나에게 돌리며 스스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로 지새우는 시간이 점점 늘어 났었다.


그러던 와중에 PD한명이 쓰러졌고 가슴이 너무 아팠던 난 충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첫번째 퇴사를 결심했었다. 주위 동료들과 상사들은 회유와 협박으로 나를 말렸다. 당시의 난 스스로 참을 수 없이 느껴지는 부족한 자질과 팀장으로서의 무게감에 대해서 위로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일어났던 일련의 문제들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아내와 두 아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크게 느껴 졌으니까. 딱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난 조용히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난 결심했었다. 다시 내 입 밖으로 ‘퇴사’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면 단호히 번복하지 않으리라. 그런 결심으로 회사생활을 이어 나갔다. 시간은 어떻게든 지나간다. 회사생활은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하지 않나. 조금씩 일상에 무디어지고 잊는 법을 배워 나갔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면 그 건 천성이다. 나는 회사생활을 견디어 가는 와중에도 독해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고 조금씩 상처 주며 지냈다. 상처가 조금씩 커져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며 시간은 흘러 갔다.


회사는 경영진이라고 하는 사장과 임원들이 살아 남기 위해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 같다. 오너가 아닌 이상 장기적인 비젼과 직원 개개인의 발전 보다는 단기적인 성과를 통해 다시 1년을 보장 받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의 연속이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비난 할 수도 없다. 정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아야 하니까. 아니면 내일 내가 사라져 버릴 수 있으니까. 5년, 10년 뒤의 비젼을 보며 회사 생활을 한 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이러한 정글에서 훈련되지 않고 성격에도 맞지 않는 팀장의 직책을 맡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고 행동도 지배한다지만 연약한 난 스스로를 견뎌내지 못 했다.


지금 팀장의 직책에 힘들어하거나 앞으로 맡게 될 팀장의 지위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예비 팀장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우선 ‘자신를 믿고 사랑하라’. 팀장의 자리까지 가게 된 직장인이라면 그 만큼 치열하게 살아 왔고 회사와 주위의 동료들에게 인정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팀장의 자질을 스스로 의심하기 이전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다른 이의 비난으로부터 본인을 지키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두번째 ‘노는 법을 배워라’. 업무에 있어 시간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어 번-아웃되지 말아야 한다. 지난친 본인의 희생은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난 참 놀 줄 몰랐다. 평소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취하거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줄 몰랐고 나의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지 못했 던 것 같다. 직장 생활도 길게 가기 위해서는 본인을 위해 놀 줄 알아야 한다.


세번째 ‘무언가 자신에게 보상하라’. 작은 것도 좋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피로를 풀기 위해 좋아하는 취미나 물건에 투자해 보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이런 자기에 대한 보상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활력을 줄 것이다.


위의 얘기들은 결국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는 거다. 희생만을 강요하는 직장생활에서 조금이나마 팀원이나 상사가 아닌 본인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잊지 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의 중심은 본인이라는 것을.


창가로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하다. 하지만 최근 난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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