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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Oct 05. 2015

아빠에 울더니, 프렌즈팝에 잠들다

#38

오늘 아이한테 상처받았다.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일요일 오후, 아내는 약속이 있어 나갔다. 나는 아이와 함께 일요일 한나절을 보냈다. 도서관에 갔는데, 아이는 아빠한테 잘 매달려 있었다. 보채지 않았다. 역시 아이와 나는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      


집에 와서도 아이와 한 시간 넘게 잘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는 칭얼대기 시작했다. 배고픈 것 같아서 이유식을 떠먹여 봤지만,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눈을 비비는 걸 보니 졸린 모양이다.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이렇게 10~20분 안고 있으면, 보통 아이는 잔다. 졸린 표정의 아이는 끝내 잠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칭얼거렸다. 시간이 지나자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악을 쓴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이를 어르고 달랜 지 30분이 넘었지만, 그럴수록 아이를 더 악을 썼다.      


집 바깥으로 나갔다. 공기가 차지만, 아이는 바깥 공기를 마시면 진정하리라. 하지만 아이는 동네가 떠나가라 악을 썼다.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였다. 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골목 이곳저곳으로 발걸음을 재빨리 옮겨야 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혹시 아이가 아픈 것 아닐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을 깨면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내가 약속이 있어 나간 뒤에는,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힘으로 아이를 돌보고 싶었고, 아내의 자유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서 아내에게 미안했다.      


통화연결음이 들렸다. 그 순간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아이가 울어서, 전화했는데…", "아이가 안 우는데요?"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다시 전화했다. 어라, 아이는 다시 울음을 그쳤다.      


몇 번이나 반복됐다. 아이는 통화연결음과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금세 울음을 그쳤다. 반대로 전화를 끊으면, 아이는 울었다. 아내는 약속을 파하고 지하철을 탔다.      

고마워, 카카오 친구들!

그런데 아내와 이런 식으로 계속 통화할 수 없는 노릇이다. 휴대전화로 여러 음악을 들려줬는데, 효과가 없었다. 아이는 통화연결음과 아내 목소리에만 안정을 찾는 듯했다. 통화연결음과 비슷한 소리를 찾다가, 불현듯 프렌즈팝이 생각났다. 실행했더니, 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이내 꿈나라로 갔다.      


아빠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잠깐의 프렌즈팝 소리에 잠이 들었다. 허탈하고,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스스로를 '시팔이'이라 부르는 하상욱 시인은 시집 <서울 시>(2013, 중앙북스)에 이렇게 썼다.      


니가

문제일가     


내가

문제일까     


- 하상욱 단편 시집 ‘신용카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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