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분명 아이를 데려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곳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다. 아이를 데려갈 이유가 없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안고 이곳의 문을 열었을 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닿은 곳은 건강검진센터다. 1년에 한 번 아내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다. 아이를 낳은 뒤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이를 맡길 때가 없어, 아이를 데려갔다. 며칠 전의 일이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건강검진을 받는 데 1시간이면 충분했다. 아내와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보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구석진 소파에 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1시간 만에 건강검진을 마치면, 아이가 똥을 싸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건강검진센터에 기저귀를 교환할 장소가 없어서, 아이가 똥을 싸면 대책이 없다.
건강검진센터 문을 열었을 때, 당황했다. 좁은 센터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구석진 곳에도 빈 소파는 없었다. 서성이며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메르스 때문에 다른 회사들도 우리 회사처럼 하반기에 직원 건강검진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를 안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간호사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서야 호명됐다. 1~2분 검사를 받고, 수십 분 기다리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아내가 수면내시경을 받을 때, 보채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센터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마지막 복부초음파 검사만 남겨뒀을 때는 건강검진 4시간째였다. 곧 돌을 맞는 사내아이를 몇 시간 안고 서 있는 건 힘들지만, 버틸만했다. 나는 괜찮지만 아이가 힘들어했다. 큰 소리로 칭얼거렸고, 아내를 찾았다. 많은 사람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초음파 검사를 받기까지 1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 동안 난 안절부절못했다.
모든 검사가 끝날 때쯤 회사 선배를 만났다. “아이를 데리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5시간이 넘는 건강검진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시간 동안 똥 안 싸서 고마워. 넌 효자야.
아이는 집에 가서 고약한 냄새의 똥을 쌌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한다. 우리 부부 또한 간절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다. 아내는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저녁과 주말에는 한 대학 교육원에서 공부한다. 맞벌이는 아니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부부는 집 주변 온갖 어린이집에 입소 신청을 했다. 물론, 아이가 태아일 때부터. 현재 민간어린이집의 경우, 우리 아이 앞에 수십 명의 아이가 대기하고 있다. 인기 많은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세 자릿수 대기번호를 받았다.
아내의 한숨이 늘어간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11개월째 키우는 아내의 몸은 이제 삐꺼덕댄다. 아이를 잠시만 안아도 팔이 아프다. 팔을 쓰지 않아야 괜찮겠지만, 그럴 수야 있나. 오늘도 내가 저녁 약속 때문에 늦어, 아내 혼자 종일 아이를 돌봤다.
우리 부부와 아이에게 ‘고슴도치 사랑’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이정하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아이야, 얼른 어린이집 가자꾸나.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 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 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도 다치지도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었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행복할 수 있었네.
- 이정하 시인의 시 ‘고슴도치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