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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Dec 11. 2015

넌 왜 돌 때 아프고 그러니..

#43

어제는 아이의 돌이었다.


돌잔치는 주말 가족과 밥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첫 생일은 새로울 게 없는 하루였다. 휴가를 내, 아이와 신나게 놀자는 생각만 해뒀다. 케이크를 사 촛불을 같이 끄는 것도 특별한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작 케이크를 사지도 못했다. 아이와 잘 놀지도 못했다. 아이가 무척 아팠기 때문이다.


아이는 며칠 전 갑자기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39.5도. 이마에 ‘쿨 시트’를 붙이고 해열제를 먹여 체온을 조금 떨어뜨려 놓아도, 아이는 금세 뜨거워졌다. 먹은 것들을 몇 번이나 게웠다. 새벽 내내 우리 부부는 끙끙거리는 아이 옆을 지켰다. 특히, 아내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아이를 안고 잠을 청했다.


병원에 가보니, 편도선이 부어 열이 났다고 했다. 항생제를 받아왔다. 항생제 남용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항생제를 최대한 쓰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도 항생제를 쓰지 않았다. 아이는 낫는 데 다소 오래 걸렸고, 아이도 우리 부부도 고생했다. 그렇지만 아이는 앞으로 감기에 더욱 강해지리라.


아이가 많이 아프니, 그 원칙은 무너졌다. 몇 시간 간격으로 아이 체온이 39도를 넘어선다면, 항생제든 뭐든 빨리 먹여 아이가 낫도록 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편도선이 붓다보니 아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소 아이가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울 때는 배고플 때다. 생존 본능 때문일 거다. 분유가 가득 든 젖병만 봐도 달려드는 아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는 젖병을 한번 빨더니, 이내 던졌다. 몇 번이고 아이 앞에 젖병을 들이밀었지만, 아이는 손으로 밀쳐내기 바빴다. 배고파서 울면서도 말이다. 분유를 마시면 목이 아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배고프니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분유를 먹지도 않으니,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제 내가 출근한 사이, 아이와 아내는 지옥을 경험했다. 아이는 배고프다보니 온갖 짜증을 다 부렸다. 계속 울었고, 계속 아내에게 안겨 있으려고 했다. 퇴근하니, 아내의 허리가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어제 아침 아이의 상태는 다소 괜찮았지만, 여전히 먹는 걸 힘들어했다. 다시 병원에 갔다. 편도선 염증은 그대로였고, 입안도 헐었단다. 설상가상이다. 나는 피곤하면 입안이 자주 헌다. 아이가 나를 닮았나보다. 괜히 미안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뭘 먹을 수 있도록 우리 부부는 온갖 묘수를 짜냈다. 밥에 김을 쌌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은 아이에게 신세계다. 젓가락으로 갖다 대니 아이가 입을 열고 먹는다. 그렇지! 한 번, 두 번, 끝. 아이는 두 젓가락만 먹고 짜증나는 표정으로 얼굴을 휙 돌렸다. 아이가 밥으로 장난치기에 그대로 뒀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먹지 않을까. 30분 후, 아이는 방바닥에 밥을 ‘처발처발’했다.

간혹 운수 좋은 밥알이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갔지만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아내는 튀밥을 가져와 아이 앞에 뿌렸다. 고소한 튀밥이라도 몇 개 주워 먹어주길 바라는 엄마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장난만 쳤다. 우리 부부는 청소하느라 진땀만 흘렸다.


아이는 지난주 월요일부터 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린이집에 있는 2시간 동안, 아이는 계속 운다고 했다. 같이 들어간 친구들은 잘 먹고 잘 자는데, 아이만 운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적응기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엄마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가는 게 극심한 스트레스였나 보다. 그래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아팠나 보다.


‘어린이집에 조금만 더 늦게 보낼 걸. 미안해.’


생일 케이크도 못 받고 온종일 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돌잔치 때 건강한 모습으로 두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와 고모할머니를 만나야지. 네가 한 번 웃으면 온 집안은 웃음바다가 되고, 네가 아프면 다들 축 처질거야. 얼른 건강해지렴.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아플 때 엄마만 찾지 말고 아빠도 찾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안으면 자지러지게 우는 네 모습에 상처받았단다. 너를 향한 아빠의 마음은 한결 같단다.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농담 / 유하


그대 내 농담에 까르르 웃다

그만 차를 엎질렀군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지나온 내 인생은 거의 농담에 가까웠지만

여태껏 아무것도 엎지르지 못한 생이었지만

이 순간, 그대 재스민 향기 같은 웃음에

내 마음 온통 그대 쪽으로 엎질러졌으니까요

고백하건대 이건 진실이에요


- 영화감독 유하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 한다>(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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