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지역을 모으는 일
나는 무인양품에서 일한다. 직책은 사원이며 직명은 커뮤니티 디자이너다. 직명 자체를 내가 정했다. 인사팀에서도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려하더라, 심지어 소속도 애매하다. 맡은 바 업무는 무인양품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기존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무인양품은 일본 회사다. 일본에서는 이미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공간을 [open MUJI]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무인양품 신촌점에 만들어졌다. 이기심과 개인의 고립, 타인과의 관계의 단절, 고립 등을 고민으로 출발해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자."라는 것이 목적이다. 단순히 유형의 무언가를 파는 공간 이상으로 무형의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진화랄까?
나는 총 2년 반 정도를 매장에서 근무했다. 일본 기업답게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본사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이 기회라는 부분에서 본사가 더 높다거나 위에 있다는 뉘앙스는 아니다. 매장을 서포트하기 위해 본사는 필요하다. 다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필수라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각자 하고 싶은 직무를 선택하면 된다. 여하튼, 아주 잠깐 독립 패션 잡지의 에디터를 해왔고 꿈을 꿨던 나는 그 꿈에서 패션만 덜어내기로 했었다. 그리고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곧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활동이 되는 곳, 그런 곳을 찾았다. 그래서 무인양품에 들어오게 됐고, 칼럼을 쓰고 싶었지만 마땅한 직무가 없던 찰나에 [커뮤니티 관리]라는 생소한 직무에 지원하게 되었다.
커뮤니티 관리란 이런 것이다. 신촌점을 기점으로 인근의 가게나 점포 혹은 학교, 주민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어떤 일을 계속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이란 워크숍, 강연회, 전시, 대담, 토론회, 견학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일본에서는 취미 활동이 좀 더 발전해서인지 부활절에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던지, 지역의 술을 마셔본다던지, 지역 마트에서 공수해 온 고구마를 나누어 먹고 품평회를 한다던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일단 한국에서 조금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말하자면, 무인양품은 지금 수도권에 굉장히 많은 매장이 집약되어 있다. 게다가 서울이 넓은 것 같지만 굉장히 좁다. 신촌점을 기점으로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했을 때, 아무리 좁게 가져간다고 해도 사실 강북 정도의 규모보다 작아질 순 없다. 게다가 지역 기반의 삶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이며, 지역 단위에서 조명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지역 단체, 로컬 숍 등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같이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꽤나 있는 것 같다.
찾다 보니 안그라픽스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책이 출간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저자인 야마자키 료의 커뮤니티 디자인 사례와 과정들이 주를 이루는 책이다. 동시에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한 필요성과 목적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자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계가 대체한다거나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회사에서 비교적 좋은 여건으로 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점, 만족한다. 종종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언젠가부터 아파트 주변에는 커뮤니티 센터라는 것이 생겼다. 이 단계까지는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어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단계였다. 하드웨어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소프트웨어가 없는 하드웨어는 기능을 하지 않는 공간일 뿐이다. 파스타 접시를 사놓고 밥그릇으로 쓰는 느낌이랄까. 그 이후부터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이 시작됐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때는 첫 번째로 재원이 부족했고, 두 번째로 자발성이 없었다. 순환구조가 아니었다. 센터에서 기획을 하고 강사를 섭외해 진행해온 것이다. 좋은 커뮤니티 디자인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센터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 활동을 통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활동이 꼬리를 물고 계속 생산되는 구조, 즉 분위기 자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다행히 재원은 그때보다 많이 풍부해졌다. 지역민의 참여 의지도 많이 높아졌다.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기까지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기대가 된다. 사실, 벌써 좀 지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