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 nest May 25. 2020

왜 빈티지 가구를 살까?

꼴 보기 싫은 유행에 대한 이야기

"요즘은 앙리 마티스 그림 없으면 장사가 안되나" 지인들과 대화 중 나온 말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모름지기 힙한 카페라면 앙리 마티스 그림이 있어야 한다. 메뉴에 플랫 화이트가 있어야 하는 시기는 금방 지나버렸다. 일단 지금은 노인과 아동문제에는 관심이 없어도, 흑인과 여성인권, 그리고 동물권에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유행에 홍수 속에 대만 카스텔라 사업에 손을 댓다가 망해버린 어느 사업가의 이야기는 관심이 없다. 이제 대만 카스텔라는 흥미가 없으니까,


한 때 패션위크는 "누가누가 사진 더 많이 찍히나" 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유행은 의식주 순서로 흐른다고들 한다. 아마도 대략 6년 전, 패션계는 바야흐로 붐이었다. 패션위크 현장 앞에는 고등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잡지, 편집샵, 블로그, 에디터, 포토그래퍼가 넘어지는 쌀자루의 쌀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맛집을 다룬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고 이제 웬만한 가게는 맛있는 녀석들, 백종원 3대 천왕, 테이스티 로드, 수요 미식회, 미슐랭, 블루리본 안에 들어간다.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는 맛집과 카페, 베이커리가 많은 곳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배고픈 직업이었던 모델계 시스템이 잡혀가기보다는 일부 인기 많은 몇몇 모델이 패션위크를 독식하며 그들만의 친목질,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그리고 정말 패션 모델다운 멋보다, 모델은 이제 연예인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스트릿 포토그래퍼들은 대포 카메라와 친목질로 생업을 유지하다. 유행의 끝에서 차별화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실제로 행방이 묘연한 사람도 있다.) 이제는 웬만한 음식점은 다 방송에 나왔다고 한다. 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가게가 대중의 평가에 정면으로 부딪혀 평점은 1점과 5점을 오간다. 냉동 패티를 써도 힙한 가게는 잘 된다. 래퍼들과 친목이 있으니까, 그래서 래퍼도 버거집을 연다. 이제는 그냥 맛있어서는 안 된다. 재료는 좋고 환경과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 비싸도 사 먹지만 내가 시장에 나가서 직접 생산자에게서 식재료를 구입하진 않는다. 시장 바닥의 시금치는 별로고, 아침 시장에서 직접 사 온 스피니치로 요리한 음식은 너무 맛있다. 인스타에 올려야 한다. 예술은 내 눈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이 멋있다고 해야 멋있는 거다.


몰개성 한 먹방 예능


그리고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DIY와 집 리모델링, 인테리어에 관한 예능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길종상가, 스탠더드 에이, 카레 클린트 등 가구 브랜드도 잡지의 한 면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근데 그것도 잠시 주춤한 듯 어느샌가 사라졌고, 앙리 마티스의 그림, 루이스폴센, USM, 임스 체어,  JBL 빈티지 스피커, 데논 리시버가 있는 카페나 을지로, 종로의 노포, 그리고 그 사이에 빈티지한 골목의 감성을 살린 하이브리드 한 공간들, 그리고 제철 식재료와 무항생제, 동물복지 같은 것들이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마켓 컬리가 성공을 했다.


2016년 즈음 쏟아지듯 나와서 쏟아지듯 망해버린 인테리어 예능


이외에도 르 꼬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바우하우스를 알고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에 간다던지, 그들의 사진이나 업적을 찬양하는 일들이 세련된 도시인을 상징하는 일들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림미술관을 대표로 사람이 미어터지던 미술관도 이제는 가지 않는다. 진즉에 이럴 줄 알았다.


마블 최초의 흑인 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블랙 팬서' / 2018년 개봉


그리고 그 외에 트렌드라면 마블을 선두로 한 흑인,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동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세련된 사람의 전형이 됐다. 올해 1월만 봐도 동물원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3편이 연달아 개봉을 했다. 지난해에는 벌새나 메기 같은 영화가 있었다.


일상 VLOG (본 게시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빠르게 많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트렌드에 반항하듯 힙스터의 힙한 행동은 곧 소소한 일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망원, 성수, 연남의 핫 플레이스에서 외식을 하더니 이제는 시장에 가서 제철 나물을 비롯한 식재료를 사서 예쁜 그릇과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는 것,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서 아카시아 접시에 놓고 먹는 것이 트렌드가 됐다. 유투버 오눅을 선두로 김나영, 신세경의 일상 브이로그를 보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 것도 같다. 큰 맥락으로 보면 다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이 많은 건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 제목처럼 요즘은 빈티지 가구를 필두로 한 다양한 빈티지 소품 등이 유행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한국은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자가를 갖기 어렵다. 그리고 서울에는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기 집을 맘대로 꾸밀 수 없기 때문에 DIY는 택도 없는 소리다. 벽에 구멍 하나도 맘대로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들이 다 가는 공간이 아닌 나만의 공간,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는 삶을 남들한테 보여주는 게 힙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것이 아닌 공간에 나의 고급진 취향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회를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고와 다른 사람들이 모방할 수 없는 나만이 가진 것, 그리고 저자극을 추구하고 소박하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나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금 이 집의 임대차 계약이 끝나도 다른 집으로 들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원한다.



그래서 찾아보면 알 수는 있지만 찾아보지 않으면 (=지식이 없으면) 모르고, 어느 정도 역사와 콘텐츠를 품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살 수 없는 빈티지 가구를 사는 것이다. 이는 공간을 채우는 음악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음악 관련 소비재가 어떤 게 있을까? 바로 스피커를 비롯한 음향기기와 LP, CD다. 물론 디지털과 음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부분은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 차이를 갑자기 알게 돼서 근 2-3년 동안 갑자기 원래 알던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제철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한국 땅에서 자란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서 화려하기보단 소박한 음식을 해 먹고, 건강하게 자란 고기와 계란을 소비한다. 집에선 요리도 안 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시장에는 가지도 않고 과도한 서비스의 경쟁이 만들어 낸 과노동의 산물인 야간 총알 배송을 이용한다.


[데이터+] 편리와 권리 사이… '새벽 배송' 노동자 처우 갑론을박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89


다 좋은데 진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너무 아쉽고 과하게 말해서 역겹다. 진짜 비건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비건이 진보된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의 표상인 것 같아서 비건을 하는 게, 국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함으로써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생산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다양성을 열어주겠다는 마음이 아니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멋있으니까 하는 거, 그게 싫은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인정을 안 한다. 얼마 전에 백종원 씨가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착한 척하다 보니 사람이 변했다."라고 표현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별생각 없이 멋있어 보이니까 하는 거면 그렇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하고 멋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잘 모르는데 사람들이 사는 게 있어 보이니까 산다.", "나는 잘 모르지만 알고 싶어 져서 산다.", "뭔지 잘 모르는데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나도 예뻐 보이더라", "돈 모아서 겨우 샀다. 저 가구 빼고는 다 이케아다." 누군가는 그럴 거다, 자기가 자기돈 쓰고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인스타그램은 원래 그런 공간 아니냐고, 물론 맞다. 근데 나도 그냥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싫다. 유행에 따라 산업과 거기에 생업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적어도 그에 대한 생각은 하고 살았으면 한다는 거다.






작가의 이전글 야생과 공존을 위해 만들어진 무인양품의 카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