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과 커뮤니티는 뭐가 다른가
얼마 전 이직을 알아보았다. 별개 안 나올 거란 건 알았지만 구직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다. '커뮤니티',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구직 공고가 눈에 띈다. 대부분이 '커뮤니티 매니저', 구직 내용의 '커뮤니티 매니저'는 주로 공용 사무공간 혹은 공용 주거공간 (코-워킹, 코-리빙) 등에서 입주자의 입주를 장려하고 입주 후 입주자 공동체를 위한 시설 관리, 서비스와 콘텐츠 기획 등을 담당한다. 같은 커뮤니티 관련 포지션이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이직활동은 잠정적으로 실패했다.
실패적인 이직 활동에서 느낀 점이 있었다.
1. 요즘 경력직 채용은 알음알음 (=인적 커뮤니티를 활용해서) 채용한다고 한다. 보편적인 표현으로 '스카우트'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2. '커뮤니티'는 주로 '공동체', '지역사회'로 통용되지만 뜻만 놓고 보자면 '인맥'에 더 가깝게 쓰일 때도 종종 있는 것 같다. "더 자연스럽지 않나?"라고 느낄 때도 있다.
실제로 지금 한국은 커뮤니티가 대세다. 몇몇 유명한 인터넷 커뮤니티(개인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곳들이 많지만)부터 오프라인의 공간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예술가, 디자이너 등 창작자들 간의 커뮤니티까지, 아는 사람들끼리 같이 뜻을 맞춰 도모하고 실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들은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도 하며 그 바탕에는 '즐긴다'는 마음이 있기도 하다. 이런 인적 커뮤니티에 기반한 프로젝트가 활발한 이유는 아무래도 단순히 벌이를 위한 작업들보다 자유도나 만족도가 높고 장기적으로 개인 혹은 스튜디오의 이력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따로 클라이언트나 투자자가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간섭하지 않고 높은 자유도를 줬을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은 큰돈을 쓰는 게 무색할 만큼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지만)
공동체, 사람들 간의 인적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다. 이력서에 적힌 몇 줄의 텍스트보다 관계를 기반으로 한 평판이나 믿을만한 사람의 '증언'에 많은 힘을 싣는다. 실제로 기업의 채용과정도 그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은 연락처가 적힌 수첩 한 권으로 구치소에서 석방이 되기도 하며 갑자기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극 중 부장검사를 소개받는 장면에서는 '부장검사의 할아버지의 9촌 동생의 손자'로 소개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내 '할아버지의 9촌 동생의 손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유명한 대사는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이XXX야 해 해쓰 인마!"라는 대목이다. 혈연, 지연을 넘어서 밥을 먹고 사우나를 간 인연(다해쓰! 는 뭘 다했는지 모르겠지만,)을 내세운다. 사실상 남이나 다를 것도 없는 사이인데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맥'의 표상이다. 정말 표면적이거나 순간적인, 굉장히 단순한 형태다. 그렇기에 '인맥'은 부정적인 단어로 쓰이는 것 같다.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맥'이 대중적으로 물의를 빚고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라고 하면 스윙스의 인맥 힙합 논란일 것이다. 물론 내가 기타 정치나 사회 이슈가 관심이 적어서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쇼미 더 머니 8>에서 스윙스는 프로듀서로 참가했고 심사 과정에서 잠재력을 보고 뽑았다든지 재 참가자로서 발전된 무대를 보여주지 못했다든지 심사 기준에 대한 시청자의 동의를 얻지 못했던 몇 개의 사건들이 있었다. 그 결과 프로듀서 공연 중 스윙스가 나온 영상은 좋아요가 싫어요보다 7.5배가 많다든지 이래저래 '인맥 힙합'의 대명사로 비호감 이미지가 됐다. 이런 논란은 스윙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시즌 3부터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사건은 스윙스가 <쇼미 더 머니 9>에 출연하면서 다소 사그라들었다. (아예 반전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심사위원이라는 것이, 게다가 그게 인기 있는 대중매체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많은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객관적인 심사 기준으로 대중의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들은 스스로의 감각에 따라 평가하고 심사하도록 고용된 입장인 데다 근본적으로는 재능 있는 사람을 오디션을 통해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이다. 동시에 오히려 획일적인 심사기준을 적용한다면 개성 있는 참가자가 빛을 보지 못할 거라는 의견도 존재할 것이다.
우승 특전을 AOMG 계약으로 내세운 <사인 히어>는 대부분의 심사위원이 AOMG 소속 아티스트, 프로듀서인 데다 프로그램 담당인 남성현 PD는 <건반 위에 하이에나>를 통해서 로꼬, 그레이와 연을 바탕으로 <사인 히어>까지 제작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인 히어>는 사실상 본격 AOMG를 위한 방송이다. 또한 <쇼미 더 머니 9>의 실질적 우승자는 AOMG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프로듀서만 해도 그루비룸, 코드쿤스트가 AOMG(=하이어뮤직) 소속이고 파이널 경연의 8번의 무대에서 피처링만 해도 우원재, 로꼬, 그레이, 박재범, 이하이, 소금, 사이먼디가 나왔다. 이런 독점적인 행태에도 사람들은 열광할 뿐 AOMG에 대해서는 인맥 힙합이라는 이슈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소속사 아티스트는 'fail'을 누른다는 국룰을 만든 장본인이 스윙스라고 한다)
이는 '인적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커져가고 사회 안에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인맥'과 '인적 커뮤니티'를 구별하기 어려워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인맥'과 '인적 커뮤니티'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앞선 여러 논란들 중에서 단순히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힘을 발휘한 결과들을 떼어 놓고 보면, 결과적으로 <쇼미 더 머니 3>에서 기리보이와 씨잼의 등장과 성과는 단순히 인맥 힙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한다. <쇼미 더 머니>는 예선이 가장 재미있긴 하지만 예선이 전부가 아니다. 본선 무대는 음원 발매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실력과 신선함, 방송 외적인 인지도와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씬 안에서 맥락을 가진 인물을 뽑는 것은 당연하다.
스윙스의 인맥 힙합 논란은 단순히 힙합씬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서 기준에 대한 물음이기보다. '인맥'과 '인적 커뮤니티'의 모호함 속에서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의문이 컷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인맥'에서의 박탈감이 스윙스라는 캐릭터에게 표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인맥'이라는 단어 자체에 어떤 긍정, 부정의 뉘앙스가 사라져서 커뮤니티라는 말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됐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은 개인적인 의견이니 비판은 환영합니만 비난은 꺼려집니다.)
그렇게 한국의 인맥은 최익현과 스윙스를 거쳐 무언가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인맥이라는 게 잘 작동한다면 아주 유용하고 좋은 장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여러 선례와 표상에 갇혀 조심스러운 대상이 되어 다소 경직된 것 같다. <쇼미 더 머니9>에서 스윙스의 등장과 기리보이의 눈물, 릴보이와 딥플로우, AOMG 까지 과연 단순한 '인맥'이 전부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