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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우카 Sep 29. 2020

내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유 - 1

적당한 거리감의 미학.

나쓰메 소세키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문장이 있다.  “무사 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전지적 고양이 시점으로 표현된 문장이지만, 이 문장을 읽는 사람이라면 “맞아. 그렇지.” 끄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가슴에 슬픔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 누구나 자기 분량의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 슬픔의 수만큼, 슬픈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쏟아 내리는 눈물로, 애써 웃는 웃음으로, 무덤덤하니 잊은 듯 일상의 성실함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낙담으로, 무관심한 늘어진 잠으로 그 슬픔들을 표현한다.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듯해도 그 모습 뒤에 감추인 슬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양이의 눈은 무척이나 세밀하고도 다정하다.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이고, 자기가 최상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그들은 고대에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들이라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맞다. 고양이는 그런 동물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고양이의 단면, 보이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고양이의 위로, 고양이의 다감함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면 결코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고양이는 자기 마음대로 일지는 몰라도 결코 무례하지 않다. 섣부른 위로보다 그 특유의 조용함으로 이 슬픔이 지나가도록 함께 견딘다. 공손히 앞발을 모으고 그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도록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 맑고 투명한 눈에 마주한 내 모습을 온전히 다 받아들임으로 슬픔이 다하도록 시간을 함께 견딘다. 관계를 맺으면 돌보는 태도가 생기는 것은 비단 사람들만 아니다. 우리들이 동물과 관계를 맺으면 돌봄을 받는 이 지구 상의 가장 작고 연약한 그 생명체조차도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돌봄의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고양이는 예부터 영물(靈物)이라 하지 않는가? “나 오늘 기분이 이래”라고 말하지 않아도 고양이는 신기한 능력으로 사람의 기분을 안다. 아니 기분보다 마음을 살핀다.


잔뜩 우울한 날. 온몸에 습기를 머금고 집으로 가면 도도하게 인사를 받아야 할 녀석들이 먼저 다가와 다리를 비빈다. 그리고는 “냐앙” 낮고 긴 울음으로 그윽하게 바라본다. 그 바라봄이 얼마나 따뜻한지 목 끝까지 눌러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게 만든다. 어깨를 들썩이며 두 팔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다 고개를 들면 그 자리에 그 눈빛으로 가만가만 있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냐앙”하고 머리를 부딪혀온다. 온몸을 파고드는 털의 보드라움. 따뜻한 몸통을 울리며 골골거리며 자신의 몸을 물먹은 손에 맡겨온다. 


그런 순간이 있다. 모든 기운이 일시에 나와 연결되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가 말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전하는 나의 슬픔과 고양이의 말은 단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고양이가 전하는 위로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무언의 공간. 평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결코 무례하지 않음으로 서로를 바라본 그 신뢰가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어짐” 아닐까?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가까워지고 상대보다 자신의 위치가 높거나 배움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무례해지는 것일까?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가깝다고 상대의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닌데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손 아래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곧잘 실수를 범한다. 고양이의 위로, 고양이의 적당한 거리감의 배려를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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