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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우카 Sep 28. 2020

두려우면 좀 더 잘하라고.

홀로서기  / 엘레나 페란테  /  지혜정원

엘레나 페란테는 나폴리 4부작으로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세를 탔다. 이제는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행이 지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작년 한해 그녀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 유명한 책을 나는 이제야 펼쳤다. 1부, 나의 눈부신 친구 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4권 중 2권을 읽고는 한 템포 쉬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의 책들이 속도감 있게 읽히는 나폴리 시리즈 이런 글을 적어나가는 페란테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은둔 작가로 알려진 그녀의 이력들을 살피고 대표작으로 알려진 “홀로서기”를 구입했다.

표지에는 제목과 한쪽뿐인 하이힐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굽은 이런 글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4월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남편은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두 짝이 아닌 한 짝인 발로 홀로 서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 무너져 내리는 굽처럼 그녀의 불안하고 비틀거림이 책 표지에서부터 느껴져 가슴 한 켠 찡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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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는 15년을 함께 산 남편이 4월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아내에게 돌연 이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5년간 두 개의 얼굴 두 개의 입으로 이중생활을 해 온 남편 마리오는 스무 살짜리 어린 여자와 떠나버린 것이다. 그녀에게 일상과 두 명의 자녀와 생계의 모든 것들을 남겨두고 말이다.

 “서른여덟 살인 지금,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몰락했고 적당한 위치도 가지지 못했다. 일도 없고 남   편도 없이 마비되고 꺾여버렸다.”p37


사랑이란 무엇일까? 부부가 살아가면서 나누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부부의 내밀하고 밀도 높은 그 사랑은 배타적인 것이며 그 어떤 성스러운 영역일 것인데 그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한쪽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 이와 달리 남겨진 사람은 그 사람과 나누었던 부정되고 망각된 그 사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그녀 역시 그랬다. 자신을 돌아보고 현실을 부정해보고, 분노한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걸어보고 남편의 마음을 붙들어보려고 애도 써본다. 자신의 육체의 나이 들어감과 변화, 여성으로서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다는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매력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남자를 찾기도 한다. 그녀에게 남편의 부재는 단순한 부재가 아닌 배신이며 함께 일구어온 삶이 무너지는, 자신의 인생이 허물어지는 절망이었다.


“아니 내가 속았고 버려졌고 비참하다고 느꼈을 때 널 제일 많이 사랑했어. 우리가 함께했던 어떤 순간보다도 널 더 원했어.”p27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랑함을 곧잘 잊는다. 함께 밥을 먹고 자녀를 양육하고 산책을 하고 다른 공간에 있어도 함께라는 깊은 신뢰가 있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는다. 사랑은 날마다 새롭고 신선한 생명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되고 낡아지며 함께 쇄락을 나누는 것 또한 사랑이다. 나 자신보다 상대를 더 잘 알고 내가 아닌 그가 되는 것이 일상의 사랑이다. 사랑의 당연함. 하지만 남편은 떠났다. 그녀는 속았고. 버려졌다. 너무나 당연시하고 잊어버린 그 사랑의 온기가 한기가 되어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더더욱 깊어지는 사랑. 추억되는 그 사랑의 소중함과 기쁨은 내 안의 남은 모든 사랑을 불태워 그를 바라보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그리고 더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그를 원한다. 하지만 그는 떠난 것이다.


“내 눈의 눈물이 마르고 내 가슴속에 남은 마지막 흐느낌마저 말라 버리자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마리오가 다시 좋은 남자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더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였다.”p211


가슴에 남은 원망과 슬픔을 온전히 게워내고 나면 다시금 채워지는 것은 타자로서의 시선이다. 응어리를 남기면 온전한 시선으로 타자화 시킬 수가 없다. 나 자신이 연소되고 남을 만큼 그녀는 아팠다. 공허감을 경험했고. 추락했다. 모든 슬픔과 아픔이 말라버리자 한 사람. 한 남자로서 남편을 바라본다. 관계가 주는 의미가 상실된 것이다. 관계가 주는 당연함의 권리 또한 사라졌다. 아파할 괴로워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관계가 형성될 때 감정이 생긴다. 사랑도 미움도 원망도 관계다. 그 관계가 끊어지면 타자일 뿐이다.

공허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사랑을 할 수 없다. 부부로 함께 있어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도 외롭다. 근원적인 외로움과 나 자신의 이기가 가져오는 공허. 그 외롬이 주는 공허감은 내가 아닌 타자로서의 상대를 보게 하는 힘이 있어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허감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면 만족할 수 없는 영원히 목마른 우물을 긷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두 가지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먼저는 책이 너무 야했다. 19금 소설이라고 할 만큼 성적 묘사가 많고 읽는 내내 당황스럽고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편의 배신을 경험하는 여자의 불안과 무너짐, 홀로서기의 과정이 너무나 치열하고 아프게 그려져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또한 육체적 변화를 겪고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나이 들어감을 경험하는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원숙한 부부의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책 제목을 보고 그이가 심각하게 말했다. 

“홀로서기, 당신 왜 이런 책을 읽어?”

 “왜 두려워?”

“응” 

그러게 말입니다. 두려우면 좀 더 잘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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